반려동물 1천만 시대 義犬 이야기 2
반려동물 1천만 시대 義犬 이야기 2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1.07.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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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14가지 `의로운 개(의견)'의 유형 가운데 충북에는 정이 많은 평범한 한국적 인간상을 상징하는 감동적인 `진화구주형' 의견 설화가 전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安)마을이다. 이 마을 수리산 아래에는 3대 명문가 집안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권근(權近·1352~1409)·권제(權蹄·1387~1445)·권람(權擥·1416~1465) 등 조선 초기 문신 3대의 묘소와 신도비다. 이 묘역은 1980년 1월 충북도 기념물 32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세조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승정원 우부승지에 특진된 권람이 아끼던 개가 바로 진화주구형 의견 설화의 주인공이다.

소한당(所閑堂) 권람이 좌의정에서 물러나고 낙향하여 한가로인 여생을 지내고 있을 때였다. 어떤 따뜻한 봄날 벗을 만나 술을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양지바른 야산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후 누가 던진 불씨였는지는 모르지만 잠이 든 사이에 산불이 나게 되었다. 권람과 함께 마실을 나갔던 개가 잠을 자고있는 주인을 깨울 수가 없게 되자 인근의 도랑에서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 주변에 물을 더 이상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주인 권람을 살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진화주구형 의견 이야기다.

그 일이 있은 후 권람 선생은 자신의 생명을 살린 개를 끔찍이도 좋아했고 개가 죽으면 내 무덤 먼발치 언덕에 개를 장사 지내 달라는 유언을 하게 되었다. 권람 선생이 돌아가시고 개도 죽게 되자 종중에서 선생의 뜻을 받들어 무덤을 만들게 되었다. 권람의 묘소 오른쪽 100m 남짓 떨어진 언덕에 개 무덤이 있는데 그 앞에는 `충견총(忠犬塚)'이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화구주형 설화가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도 전한다.

가래울 개비거리라는 마을에 방씨 성을 가진 농부와 검은 개가 살았다고 한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던 주인 방씨는 이웃 마을 잔칫집에 갔다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하게 되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고갯길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이때 누군가 버린 담뱃불로 산불이 나게 되었다. 이 검둥이 개는 주인을 살리려고 계곡까지 달려가 원곡천 냇물에서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방씨 주인은 목숨을 건졌지만 검둥개는 탈진하여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깬 주인은 자신의 검둥개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산기슭에 무덤을 만들고 `방씨네 충견의 무덤'이란 비석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는`개무덤'이란 자연마을 지명도 있다.

오래전 보은에서 조씨 성을 쓰는 사람이 죽어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주인이 죽자 함께 살던 개도 집을 나가 소식이 끊어졌다가 몇 달 뒤 이 개가 피를 흘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조씨의 부인이 이 개의 뒤를 따라가 보니 묘 앞에 새끼 세 마리를 낳아 놓았다. 비와 바람을 피할 집도 없이 새끼들이 굴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부인이 새끼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그날 밤 개는 자신의 새끼들을 물고 다시 묘 앞에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이 충견은 주인 조씨의 시묘살이를 자신의 새끼들에게까지 전한 것이다.

`의견'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소개되며 개를 사람처럼 인격화했다. 특별히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내용은 개가 인간적인 판단과 도덕을 지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때문에 미물에 불과한 동물이긴 하지만 인간에게 교훈을 줄 만하며, 또한 훌륭한 일을 한 사람처럼 비석과 무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보다도 나는 개'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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