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뇌전증, 생활습관으로 조절할 수 있어
청소년 뇌전증, 생활습관으로 조절할 수 있어
  • 최한솜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승인 2021.07.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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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한솜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최한솜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출근하자마자 응급실에 환자가 와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14세 남학생 J가 쓰러진 채 발견되어 응급실에 실려 왔다. J는 생전 아픈 적이 없었다. 이른 오전에 화장실에서 `쿵' 소리가 나서 아버지가 달려갔더니 팔다리를 쭉 뻗으며 떨고 있었다고 한다. 구급차가 도착해서야 멈추고 깨어났다고 하니 적어도 5분은 쓰러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혼잡한 응급실에서 처치가 끝난 J의 침상은 조용하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아버지가 허리를 수그린 채 J를 보고 있다. J는 눈이 부신지 왼팔을 눈 위에 얹고 눈을 감고 있다. 내가 다가가니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괜찮아?” “네. 그런데 머리가 아파요.” 피곤한 목소리다. 아버지는 아이가 숙제하느라 어젯밤에 늦게 잤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혹시 요 며칠 오전에 어깨나 팔이 움찔한 적 있어?”

J의 눈이 순간 동그래진다. 작년부터 가끔 오전 수업을 들을 때 어깨가 움찔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순간 놀란 기색으로 J를 바라본다.

“경련이 의심됩니다. 입원해서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걱정스레 묻는다. “이렇게 건강한 중학생도 경련을 일으킬 수 있나요?”

검사 후 가족에게 결과를 설명하러 병실에 갔다. J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며 J에게 게임을 끄라고 하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J와 어머니는 눈으로 내게 결과가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

“뇌파를 보면 뇌전증이 맞아 보입니다.” 좋은 치료약이 있으니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생활습관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잠은 일찍 충분히 자고, 게임은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어머니는 치료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족들과 상의하겠다며 불안한 눈빛으로 묻는다.

“약을 먹으면 낫나요?” 약을 권했을 때 보호자 대부분은 이런 걱정을 한다. 그러나 적절한 항경련제를 매일 복용하는 경우, 경련은 90% 이상의 환자들에서 잘 조절된다. 다음날 회진 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치료약을 시작하면 부작용은 없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어지럽고 졸릴 수 있지만 보통 몇 주 내에 적응되고, 일상생활에도 거의 지장이 없다고 해주었다. 몇 주 후, 진료실에 들어온 J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움찔한 느낌도, 갑자기 깜깜해지는 느낌도 없다고 한다. 어머니의 얼굴도 더 편안해 보였다. 아이가 중단했던 운동을 시작했다며, 아직은 30분 빠르게 걷는 정도이지만 늘었던 몸무게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뇌전증 환자에게 적당한 운동은 경련을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걷기는 뇌전증을 진단받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가장 안전하고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치료약을 먹으면서 생활습관을 잘 관리하면 이전보다도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요즘은 게임 안 해?”

J는 이제는 거의 안 한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하던 게임을 하지 않으려니 아주 힘들었지만 끊었다는 말에 어머니는 처음으로 웃었다.

공손히 인사하는 J의 눈빛이 맑았다. 진료실을 나서는 어머니와 J의 발걸음은 다시금 평온한 일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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