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달라졌다
그녀가 달라졌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7.06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외동딸 하나를 서울에 두고 귀촌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유명서점에 들러 부탁한 한두 권의 책을 사고 운치 있는 카페에 들러 독서도 하고 짬짬이 영화도 보러 서울을 들락거리며 아메리카노를 숭늉인 듯 마십니다. 나이답지 않게 현대적이고 세련되고 아무튼 시골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여자입니다.

70년 초반 학번의 이름난 대학 영문과 출신답게, 아니, 파리에선가 외국에서 조금 살았다던가? 아무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유럽의 이곳저곳에 대한 해박한 지식 하며 여자들이 뿅 가는 소위 명품이나 팝송까지, 두루두루 배운 티가 팍팍 나는, 도시 스런, 세련된 그녀입니다.

그런 그녀가 달라졌습니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면서부터 차츰 사이가 뜸해져 갑니다. 그녀는 네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다가 어느 사이 동네의 길고양이들까지 돌보면서 차츰 동물애호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에게 많은 죄를 짓고 있다고 걱정합니다. 고양이가 굶을 것을 생각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아 서울의 딸네 집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한다고 엄살입니다. 젖먹이 아기를 키울 때의 엄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고양이들 생각뿐입니다.

네 마리 고양이 중에서도 제일 정이 가는 한 놈이(이름을 잊어버려서) 명란젓을 좋아하는 자기 식성을 닮았다고 신기해합니다. 하여튼 유기농 사료며 병원비며 고양이한테 들어가는 비용이 자신의 생활비 대부분이라고도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길고양이나 주인 없는 개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30년 운전경력이라면서 마음껏 속도를 내는 적이 없습니다. 만남의 광장 같은 곳에서 어쩌다 집 잃은 개나 고양이를 만나면 사료며 자신이 먹으려고 휴대한 물과 빵까지 아낌없이 내어주고 돌아섭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커피 마시러 가게에 갔다가 문 앞에서 노란 얼룩이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바닥에 늘쩡하게 누워있는 것을 며칠째 살피더니 안 되겠다며 일을 벌입니다. 남의 고양이 집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수소문해서 알아낸 대구 공장까지 물어물어 찾아가 아담한 고양이 집을 사오는 거였습니다.

그녀의 생각엔 고양이는 나와 남이 따로 없습니다. 전에는 며칠씩, 아니면 한 달도 좋게 여행을 나가거나 서울의 딸네 집에 다녀오던 그녀가 오로지 고양이 걱정으로 당일치기 아니면 외출도 여행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녀의 삶의 사이클은 언제나 고양이와 함께 돌아갑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에게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깊이 깨닫는다면서 늦게나마 조금씩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 합니다. 그렇게 뉘우치는 삶이어서 좋아하던 육식도 일거에 딱 끊어버리는 용단을 내렸답니다. 동물들에게 미안해서 도저히 고기를 못 먹겠다니, 채식 위주의 식사를 고집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우리들의 맛집 순례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고양이 엄마로 철두철미하게 거듭나고 있습니다. 예방주사며 철철이 털을 깎아주는 것은 물론 고양이 심리학 박사라던가 고양이 영혼과 말한다는 크리에이터를 가까이 의지하며 많은 조언을 경청하기까지 합니다. 딱 고3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 상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맞지만 고양이들이 있어 자신이 거듭났다며 우울증을 앓거나 염세주의자라면 조심스럽게 한번 권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고양이 한 번 키워 보세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