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접시꽃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7.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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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들은 봄을 꽃의 계절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여름꽃도 봄꽃 못지않게 다양하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다만 잎새의 푸르름과 어우러져 있어 도드라짐이 덜할 뿐이다.

여름이 열릴 즈음 그 자태를 드러내는 꽃이 있으니 접시꽃이 그것이다. 이 꽃이 언제부터 이 땅에 있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요즘 초여름에 가장 눈에 띄는 꽃임은 분명하다.

신라(新羅)의 시인 최치원(崔致遠)은 먼 이국 땅인 당(唐)에 유학하면서 접시꽃을 접하고는 깊은 감회에 빠졌다.

접시꽃(蜀葵花 )

寂寞荒田側(적막황전측) 외지고 묵은 밭 옆에
繁花壓柔枝(번화압유지) 풍성하게 핀 꽃이 여린 가지를 누르네
香經梅雨歇(향경매우헐) 장맛비가 그친 데로 향기가 지나가고
影帶麥風㿲(영대맥풍의) 그림자는 보리 바람에 흔들거리네
車馬誰見賞(거마수견상) 수레 탄 사람이 누구라서 보아줄거나?
蜂蝶徒相窺(봉접도상규) 벌 나비들만 보고 다니네
自慙生地賤(자참생지천) 난 데가 비천하다고 스스로 부끄럽긴 하지만
堪恨人棄遺(감한인기유) 사람들에게 버림받음을 원망하는 걸 어찌 감당할까?

시인이 생존하던 시기에 이 땅에는 접시꽃이 흔치 않았던 듯하다. 유학하기 위해 기거하고 있던 중국 땅에서 처음 접했을 테지만, 시인에게 이 꽃은 몹시 친근하게 다가왔다. 먼 외지고 묵혀 놓은 땅에서 피어난 접시꽃을 보고 먼 타국에서 외롭게 유학 생활을 하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보아 주는 이도 없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이 둘의 처지는 자신들 탓은 아니다. 접시꽃은 결코 꽃이 초라하지 않다. 도리어 어찌나 풍성하던지 여린 가지가 눌려 늘어질 지경이다.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재능이 결코 부족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재능은 넘치고 남는다. 접시꽃은 꽃이 풍성하기만 한 게 아니다. 향기며 그림자며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다. 특히 장마 그친 곳을 스치는 향기는 가히 일품이다. 보리밭에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시인 자신도 재능뿐만 아니라 인품이나 풍모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그런데도 봐 주는 이 없는 신세이니 어찌한단 말인가? 거마를 탄 고관대작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벌과 나비만 찾는 신세가 된 것은 꽃이 하필 비천한 데서 폈기 때문이고 이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서러운 것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그것을 마음대로 원망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꽃이 많고 화려한 건 봄만이 아니다. 여름에도 꽃은 충분히 많고 화려하다. 더위에 심신이 지칠 때 산야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좋은 힐링의 방편이 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접시꽃 또한 지친 여름을 치료해 주는 보약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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