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이 던져 준 숙제
이건희 미술관이 던져 준 숙제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21.06.3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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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지난 4월 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 측이 고인의 소장품 약 2만 30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고 밝히면서 미술계에 커다란 화두를 던졌다. 정부에서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이건희 미술관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전국 지자체 30여 곳은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며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립부지 선정에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중요시하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볼 권리만큼은 수도권에 양보할 수 없다는 비수도권의 여론이 만만치 않다. 청주시도 이건희 컬렉션 유치 효과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증설과 문화제조창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 또한 이건희 컬렉션 2만 3000점이 전시될 이건희 미술관이 어디로 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이번 기증품 중에는 국보 제216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보물 제2015호 고려 천수관음 보살도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과 모네, 고갱, 르누아르,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기존의 지역 미술관과 박물관 투자에 무심했던 지자체들이 왜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이건희 미술관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관광객이 몰려들고 문화예술 중심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미술관 건물만 멋있게 짓고 작품만 놔둔다고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건희 컬렉션을 체계적으로 연구·전시하고 관련 미술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하려면 초기 투자비용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문화도시를 만든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전시 공간 확충, 소장품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용률이다. 2018 문화향수 및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0명당 16.5명에 불과했으며 예술가가 예술활동을 통해 얻은 월평균 수입이 30만원이 안된다.

6월 14일부터 23일까지는 2021 박물관·미술관 주간이었다. 박물관·미술관 주간은 세계 박물관의 날을 계기로 201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가 매년 주최하는 행사다. 올해에는 `박물관의 미래: 회복과 재구상'을 주제로 전국에서 다채로운 온·오프라인 행사가 펼쳐졌다. 주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집에서도 박물관·미술관을 만날 수 있는 `뮤궁뮤진', 전국의 박물관·미술관 명소를 찾아다니는 도장 찍기 여행 `뮤지엄 꾹' 등 흥미로운 행사들이 많았으며 필자가 레지던시로 있는 라폼므현대미술관에서도 이정골 마을 `신항서원' 이야기를 메타버스 속 디지털 가상공간에서의 예술체험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지자체 담당자나 일반 시민들이 이러한 문화예술활동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미술관 유치보다 이미 지역에 있는 기존 미술관의 예술교육프로그램 강화와 디지털 시대변화에 맞는 다양화 그리고 지역 박물관 및 미술관 홍보 활성화가 더욱 시급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이건희 미술관이 공간으로써 또 하나의 지역미술관이 아닌 특별한 시간을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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