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6.3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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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딸아이가 정기적으로 헌혈한다는 것을 알고부터 함께 정기 헌혈에 참여하고 있다. 헌혈은 8주에 한 번씩 할 수 있다. 1년이라고 해도 최대 여섯 번밖에는 할 수가 없고 어쩌다 헌혈 주기를 놓치면 이 여섯 번도 하기가 어려워 휴대전화에 알람을 설정하고 미리 헌혈 예약을 해두어 잊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6월 헌혈 후 휴대전화로 알림 문자가 왔다. 헌혈자를 대상으로 혈통 분석 유전자 검사를 무료로 해주는 이벤트 안내였다. 재미삼아 응모했는데, 이런! 당첨되었다. 유전자 검사 키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내 혈통 구성은 어떨지 궁금증 대폭발이다.

혈통 분석 유전자 검사 서비스는 사람의 침에 담긴 유전자 염기서열 30억 쌍에서 70만 개에 달하는 유전정보를 분석해 약 20여 개 인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원래 조상은 누구인지, 어떤 이동 경로를 따라 혈통이 섞였는지를 보여 준다니 곧 내 조상은 누군지 어떻게 이 작은 땅인 한반도에 와서 살게 된 것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달, 미국 천문학자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이 첫 책을 발간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에세이의 제목은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이다. 칼 세이건과 영화 및 TV쇼 제작자인 앤 드류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극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부모로부터 방대한 우주와 자연현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으며,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번 에세이에는 그런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이 따뜻하게 드러나 있다.

에세이는 태어남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 한 주의 의식, 매일의 의식, 성년, 결혼, 다달의 의식 등 삶의 중요한 마디마디와 그 의미를 기록했다. 우리 삶의 주기가 이렇게 기록되었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변화로 이야기한다. 춘분 무렵 새 생명의 기운으로 깨어난 세상은 여름의 뜨거운 땀방울로 결실하며 추분이 지나면 서서히 식물은 시들고, 동물은 동면 준비를 한다. 빛이 점점 사그라지는 가을을 이겨내기 위해 여름의 결실로 축제를 벌이며 그 축제를 기화로 삼아 어둠과 죽음, 겨울을 수용한다.

우주의 광대함으로 보면 한 점도 되지 않은 작은 존재인 인간은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를 살다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샤 세이건은 존재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큰' 무한한 우주, 그중 `우리가 살기에 딱 적당하게 완벽히 맞춰진 행성'에서 태어났으니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실상 기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번에 받게 될 혈통 분석은 30억 쌍의 염기서열에서 70만 개의 유전정보를 검색한다고 한다. 그 많은 선택지 중 유사한 염기서열을 갖게 되는 일은 얼마나 기적적인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태어나야 하고, 태어난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져야 하며 그 결과로 한 생명이 잉태되어야 내가 비로소 비슷한 염기서열을 가진 채 세상에 나온다. 그 어머니, 그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조부모가 각각 태어나야 하고, 그들이 만나야 하고…. 생각할수록 기적적이다.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지금 이 시대 이 땅에서 부대끼며 사는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 역시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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