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꽃
나이꽃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06 2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채화의 문학 칼럼
"저 녀석 왜 저렇게 늙었어. 대머리에 똥배는 또 뭐람."

동창회에 미리 나온 사람들이 뒤늦게 문을 여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갖는 생각이란다. 내가 등장할 때에도 다른 친구들이 역시 그랬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어릴 적만 기억하고 있다가 만나니 아무리 동안(童顔)이라 해도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광고 문장도 있으나 요즘 친구들을 만나 보면 나이가 서른아홉이라거니, 마흔아홉이라거니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한다.

조금이라도 나이를 높여 말하던 때와는 사정이 달라진 모양이다. 게다가 만나면 무엇이 몸에 좋다더라 무엇은 몸에 해롭다더라며 각자 듣고 본 지식을 동원해 목소리를 높이니 이제 건강을 염려할 만큼은 나이를 먹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최근 김진수 수필가의 두 번째 수필집 '하얀숲'(2007, 푸른나라)을 대면하게 되었다. 세상사나 사물 또는 자연 현상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솔솔 글을 써가는 김진수 수필가의 글맛을 아는 까닭에 한 번 잡아 끝까지 읽게 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나이를 제재로 한 '나이꽃'에 눈길을 멈추었다. 세월이 지나면 주름과 함께 늘어나는 나이와 꽃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탓이라면 쉽게 이해가 되나 나이꽃이라니 낯설다. 김진수 수필가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갖기에 꽃이라고 했을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니 후세를 위해 빈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지금 나이를 먹었으나 꽃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일까. 분명코 나이에 대하여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나이꽃'은 '동심회' 친구들과 목욕탕에 가서 생긴 사건을 분기점으로 하여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는 나이로 인해 오해가 생긴 사건이 중심이다. 손등이며, 얼굴이며, 머리카락까지 사정없이 쏟아지는 세월의 무게가 그저 무섭기만 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화자에게 나이는 아직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화자는 "언년이 이것 좀 사가. 방금 밭에서 따온 오이하고 호박이야 싸게 줄게"라고 소리치는 노점상 할머니의 소리를 듣는다.

언년이라고 불러서라기보다는 얼마나 어려우면 백발의 노인이 시장바닥에 나 앉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 할머니 물건을 떨이한다. 그러나 등을 돌리자마자 언년이라는 말이 얄팍한 상술임을 알았다. 우롱당한 느낌이었다. 누구나 나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해프닝이다. 화자는 이런 해프닝을 통해서 할머니의 무거운 짐에 비하면 자신의 나이 타령은 사치스럽다고 반성한다.

이어서 '동심회' 친구들과 목욕탕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즉 부산 사투리가 진하며, 유난히 머리가 하얀 친구를 가리켜 목욕탕의 다른 할머니들이 엄마냐고 물어서 폭소가 터진다. 그러나 오히려 그 친구는 능청스럽게 "그래 좋다 내사 배 앓지 않고 딸을 아홉이나 두었으니 딸부자 아이가"라고 받는다. 언짢을 수 있는 사건을 능청스럽게 받아넘긴 사건을 두고 "오래 살다보니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일 줄도 안다. 언짢은 일도 넓은 도량으로 돌려 생각하는 지혜를 얻는다"고 인식한다. 나이를 평면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입체적이다. 나이에 부합하는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의 성찰이 어우러져 있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그래서 하루가 다르게 쭈그러 들어가는 육신의 저 안쪽에 언제나 변치 않는 마음과 항상 어린아이 같은 천진스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한 그것을 이름하여 나이꽃이라 하면 어떨는지 제안한다.

화자의 제안은 강요나 주장이 아니다. 나이꽃이라 부를 만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일 터이다. 불로초를 구하려고 하지 않고, 오는 백발 가시로 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큰 강물처럼 소리도 없고 뒤척이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를 따름이다. 그 모양이 아름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