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2
텃밭일기 2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1.06.29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가게 일이 바빠서 며칠 만에 쉬어家에 들어왔다. 어스름 새벽에 일어나 돌아본 텃밭은 그야말로 잡초들의 천국이었다.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기 전에 먼저 꽃길을 걸으며 꽃들과 인사를 나눴다.

활짝 피어난 금잔화가 소담하고 패랭이에 이슬이 맺혀 영롱하다. 키다리 접시꽃 잎에 달팽이 두 마리가 제법 튼실하게 자라 붙어 있다. 차마 잎에서 달팽이만 떼어낼 수 없어 접시꽃 잎을 뜯어 편백나무 언덕 위에 놓아 주었다. 바위틈에 자리 잡은 백합들은 한창 꽃망울을 부풀리는 중이다. 조만간에 활짝 피어나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 감탄하게 하리라.

며칠 동안 돌보지 못했어도 텃밭과 꽃밭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잡초들은 땅이 좁은 듯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넓혀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안됐지만, 잡초들의 전성시대는 오늘 내 호미 끝에서 며칠 동안은 막을 내릴 것이다.

꽃들도 피고 지며 벌들에게 꿀을 내어주고 씨앗을 맺으며 자연에 순응하며 상생하고 있었다. 호미를 들고 콩밭에 앉았다. 올해 서리 태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밥상보다는 새들의 배를 먼저 불려준 듯 듬성듬성 자리가 훤하다. 밤사이 내린 비가 흙을 부드럽게 해준 덕에 풀 뽑기가 한결 수월하다.

두어 시간 남짓 잡초와 씨름을 하다 보니 등이 후끈하다. 어느새 동쪽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떠올라 몸을 붉게 달구고 있었다. 매번 호미를 들고 밭에 앉으면 제초제의 유혹에 흔들리며 잡초와 드잡이를 하지만 오늘도 잡초와의 씨름은 나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깨끗해진 밭을 보니 속이 후련하다.

아래쪽 텃밭에서 부추를 한 움큼 자르고 파 두 뿌리와 청양고추 서너 개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샐러드를 할 채소를 몇 잎 젖히고 마지막으로 상추를 뜯었다. 올해 상추 농사는 대성공이다. 우리 가족이 푸짐하게 뜯어 먹어도 남아 이웃들과 나눠 먹어도 상추는 어느 사이 무럭무럭 자라 남아돌았다.

아무래도 상추의 쓰임새는 사람들의 입만 즐겁게 해 주는 게 아닌 듯하다. 콩 톨보다 작았던 달팽이 녀석들이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쯤 자라 여기저기 많이도 붙어 있다. 하지만 상추 잎을 갉아먹은 흔적이 신기하게 없다. 쌉쌀한 상추는 달팽이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옆의 샐러드 채소만 다 갉아먹었다. 상추의 넓은 잎은 달팽이들의 시원한 그늘 쉼터이자 놀이터인 모양이다. 오늘 아침식탁에 올릴 찬거리는 밭에서 해결했으니 앞으로는 텃밭시장이라고 불러야겠다.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상추쌈과 먹는 아침은 꿀맛이다. 텃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난 후에 내 손으로 가꾼 채소로 밥상을 차려낸 흐뭇한 마음도 한몫했으리라. 이 맛에 힘들어도 기꺼이 잡초들과 전쟁을 하며 채소를 가꾸는 것 일게다. 도시 콘크리트 숲에서 가게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 내는 일이 숨차고 버겁다가도 쉬어가에 들면 모든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고 평화로워진다.

내가 호미를 들고 풀을 뽑는 것을 보고 답답하다는 듯 주변에서는 제초제를 쓰면 편할 텐데 사서 고생이라고 걱정들을 한다. 그럼에도 밭고랑에 호미를 들고 앉아 풀을 뽑느라 땀을 흘리는 그 시간조차도 언제나 마음은 평화롭다. 나는 농부는 아니다. 하지만 농부들이 흘리는 땀의 의미를 내 텃밭에서 느릿느릿 알아가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