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그녀는 예뻤다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6.2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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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그녀를 문학회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 이상이 가렸음에도 또랑또랑한 눈빛과 고운 눈매가 곱살하다. 내가 눈으로 웃으니 그녀도 눈으로 답한다.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하지 않던가. 냉큼 그녀에게 `첫인상이 참 좋다'고 했다. 좋은 말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똑같이 기분이 좋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맙다고 한다.

두 번째 만남이다. 정장 웃옷에 반바지 차림이 상큼했다. “참 앳돼 보여요.” 내 말에 그녀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덧니를 내보이며 활짝 웃는다.

젊은이는 혈기가 왕성하고 늙은이는 기력이 쇠해진다. 젊은이는 면티에 청바지 차림도 멋져 보이고 늙은이는 말쑥하게 차려입어도 어딘지 모르게 추레해 보인다. 젊은이 생각은 새봄처럼 새롭고 늙은이 사색은 한겨울 골방에서 메주 띄우는 냄새만큼 고리타분할 때가 있다. 이래저래 젊은이를 반기고 나이 든 사람은 꺼리는 시대이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젊어 보인다.', `앳되어 보인다.'고 하면 좋아한다. 그러다 혹간 젊어 보이는 것을 삶의 최대 과제로 삼다가 결국 인생이 망가진 사람도 있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속이 빈 대나무처럼 겉이 반들반들하고 윤이 난다고 속이 꽉 찬 것은 아니다. 젊어 보이려고 하는 짓이나, 어려보이려고 애쓰는 행동은 어쩌면 내면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이 든 나에게는 가당찮은 말이니 심통을 부리는 심정으로 `앳되다.'에 대하여 반기라도 들어봐야겠다. `애'는 애벌레, 애호박, 애송이처럼 애티가 나는 사람이나 물건에 붙인다. 이처럼 앳되다는 애티가 있어서 어려보인다는 말이다. 과연 어린 것이 무조건 다 좋은 걸까.

어리다는 것은 아직 덜 자란 상태이고 덜 여문 시기이다. 배추흰나비가 고치에 들어가기 전의 애벌레 상태이다. 도예가가 만든 도자기 작품이 가마로 들어가기 전이다. 아울러 내 졸고가 앞뒤 엉킨 구성에 표현이 거칠거칠한 초고 상태와도 같다.

그러니 사람 내면은 앳되어 보인다고 하면 안 되지 싶다. 실속도 없이 겉만 산뜻하다면 외미중공(外美中空)으로 속이 빈 강정이다. 깊이 보지도 못하고 멀리 날지도 않고 눈앞에 이익만 좇는다면 어리석기 한량없다. 한 술 더 떠 세월이 거꾸로 간 것 같다고 하는 듣기 좋은 말이 나이 먹은 값을 못 한다는 말도 될 터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두 번 밖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그녀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이미 여러 번 대화가 오갔다. 겉모습은 애호박처럼 앳되어 보였지만 속내는 늙은 호박처럼 통통하게 여문 씨앗으로 꽉 찼다. 섣부른 내 글을 보고 조심스럽게 내비친 평은 보통 수준을 넘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하나의 축을 이루고 새로워진 삶의 축은 단단한 성숙의 계단에 발을 디뎌야 한다고 일깨운다. 동근원적 사유가 삶을 바꾼다고 한다.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우주의 요소라는 통찰로 이어진다. 속은 심오한 철학이 가득 담긴 화수분 하나 들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닌 사유가 화려한 보석처럼 귀하고 예뻤다.

나는 번번이 `젊어 보인다거나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에 일희일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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