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기념관에 서려면
윤봉길의사기념관에 서려면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6.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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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내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고 한다. 어서 그라운드로 나와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으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응한 셈이다. 문제는 그를 기다리는 것이 지지자들의 환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X파일'논란부터 돌파해야 한다. 본인과 처, 장모의 비리 의혹을 정리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한 정치평론가가 두가지 파일을 입수해 내용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그는 “방어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윤 전 총장에게 비수까지 꽃았다.

이미 시중에는 X파일의 여러가지 버전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파일 논란 탓인지, 여론조사 지지율도 빠지는 분위기다. 그의 경쟁자가 될 최재형 감사원장의 정치 입문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윤 전 총장의 도중하차에 대비한 `플랜 B'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윤 전 총장은 여당 쪽에 문서의 공개를 촉구하며 “공공기관과 집권당이 개입해 파일을 작성했다면 명백한 불법 사찰”이라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지만 국민은 파일의 출처보다 내용과 진위를 알고싶어 한다. 또 그가 이 거친 통과의례를 어떻게 극복할 지 역량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한편으로 그에겐 불신과 의심을 씻어낼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그는 총장 직을 물러나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이야 말로 자신이 강조한 상식을 실천할 때다. 윤 총장이 말한 상식은 대다수 국민의 보편적 판단을 의미할 터이다. 국민은 지금까지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나 송구하지만 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는 변명을 위정자들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눈이 너무 높아 죄송하다는 낯두꺼운 변명은 사과가 아니라 듣는 눈 낮은 이에게는 모독이다. 윤 전 총장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이런 해명을 내놓으며 합법을 강조할 경우 `조국'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만약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되고 그 수위가 상식에 반할 정도라면 엄중하게 스스로의 자격을 심판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출사표를 낼 모양이다. 윤 전 총장 측은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만든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인 헌법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국민들께 보여드리기 위해 윤봉길기념관을 택했다”고 밝혔다. 윤 의사는 1932년 상하이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축하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주둔군총사령관 등 일본군 장성과 고위직 여럿을 처단한 인물이다. 25살에 불과한 나이였고 거사 후 일본 본토로 끌려가 그해 총살형을 당했다. 중국 장제스 총통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청년이 했다”며 부끄러워 했다.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윤봉길이 23살 때 항일 투쟁을 위해 집을 떠나며 쓴 편지에 담긴 명문이다. `뜻을 품고 집을 떠난 대장부가 어찌 살아 돌아오길 바라겠는가'. 윤 전 총장은 내일 소신을 밝히며 윤봉길이 품었던 이 비장한 각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윤봉길은 유서에도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압록강을 건넜다”고 썼다. 그를 상해 임시정부로 인도한 것은 권력욕과 명예욕 따위가 아니었다. 윤 전 총장은 `생불환'의 각오보다 어린 아내와 아들 둘을 남기고 압록강을 건너던 윤봉길의 처연했던 심회부터 헤아리기 바란다. 윤봉길기념관은 세속적 욕망과 공명심에 사로잡힌 한낱 필부가 설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윤 전 총장이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우는 일을 과업으로 삼았다면 `백의종군'도 불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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