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뽑기와 마음 수행
풀 뽑기와 마음 수행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1.06.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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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내일은 꼭 해야만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스마트폰 알람 시간을 5시에 맞추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딩동딩동” 알람이 울린다. 어서 일어나라고 자꾸 재촉한다. 갈등이 생긴다. “몸도 피곤한데 내일부터 할까? 유혹이 밀려온다. 안돼! 오늘마저 미루면 더 힘들어져” 모처럼 이성의 뇌가 승리했다. 하지 말자는 온갖 핑계를 물리치고 몸을 일으켰다. 위대한 승리다.

차가운 물로 세수하니 정신이 맑아진다.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농촌에서 일하려면 옷을 잘 챙겨 입어야 한다. 바지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가볍고 시원한 몸빼 바지가 최고다. 농사일에 이보다 더 적합한 옷은 없다. 버리려고 모아 두었던 긴 팔 와이셔츠도 유용하다. 벌레들이 많아 피부를 노출하면 안 되기 때문에 긴 소매 상의는 필수다. 목에는 가벼운 수건을 두르고, 토시와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면 준비 끝이다. 농촌의 시계는 도시보다 빠르다. 4시면 온 동네가 깨어난다. 트랙터와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고 예초기 돌리는 소리, 엔진 톱 돌아가는 소리로 마을 전체가 시끄럽다. 해뜨기 전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가 일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마당 정원 예원의 밭에도 파, 고추, 가지, 옥수수, 콩들이 자란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면 작물보다 풀이 더 빨리 자란다. 비가 한번 내리면 더 맹렬한 기세로 밭을 점령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풀을 긁어주는 정도면 되지만 워낙 빨리 자라기 때문에 뿌리까지 뽑아야만 성장을 멈출 수 있다. 쇠뜨기부터 온갖 풀들이 판을 친다. 열흘 정도만 내버려 두면 풀이 밭을 덮어 버린다. 바쁘다는 핑계로 풀을 뽑지 않았더니 애써 파종한 작물들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된 것이다. 오늘 드디어 이런 풀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는다. 엉덩이에 깔고 앉는 이동용 의자는 필수품이다. 호미를 들고 호기롭게 시작한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할 만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손은 저리고 팔다리는 쑤신다. 벌레가 윙윙대다 눈으로 귀로 들어갈까 봐 연신 쫓아야만 한다. 그래도 땀은 정직하다. 뽑은 만큼 밭은 깨끗해진다. 뒤돌아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노력한 만큼의 성취가 바로 보이기 때문에 힘듦을 이길 수 있다. 풀을 오래 뽑다 보면 수행의 경지에 오른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오직 풀에만 집중한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참 좋은 마음 수행 방법이다. 오늘 목표한 만큼의 풀을 뽑았다. 며칠은 더 해야 마무리된다.

우리 마음 밭에도 온갖 풀들이 자라난다. 방치하고 놓아두면 원하지 않는 풀들이 내 마음 밭을 모두 차지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망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자연 상태로 두면 무질서를 향해 나간다. 엔트로피 이론이다. 아름다움은 질서에서 나온다. 질서를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풀을 뽑고 전지를 하고 벌레를 잡아야만 마당 정원 예원을 지킬 수 있다. 땀을 흘려야만 작물을 가꾸고 소출을 거둘 수 있다. 불평, 불신, 미움, 시기, 질투, 욕정 같은 풀을 마음 밭에서 뽑아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좋지 않은 마음 밭의 풀을 뽑아야 한다. 행복은 거저 오지 않는다. 내기 흘린 마음 밭의 땀방울에서 행복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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