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유가 있어
다 이유가 있어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6.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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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지난주, 가까운 곳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평일에 갑자기 떠나니,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캠핑도 떠나는 마음도 가벼웠다. 조금 불편해도 괜찮았다. 기대보다 더 큰 즐거움과 행복감을 담을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초록 지붕과 알맞은 자연의 선풍기는 새로움을 더해주고, 남편과 오솔길을 걸으며 노랗고 하얗고 분홍인 이름 모를 풀꽃을 담아와 빈 병에 꽂으니 낙원이 완성됐다.

이름 모를 풀꽃들을 보니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다. 전소영의 `연남천 풀다발'이다. 책을 펼치면 보이는 풀과 꽃들의 이름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자주 보던 것들이다. 이렇게 예뻤나 싶을 정도로 그림이 좋다. 여백의 미가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풀들이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아도, 어쩌면 지천으로 널려 있어 귀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매우 위로가 된다. 꽃이고 열매고 그렇게 생겨나고 열매를 맺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뽐내려고 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물에 닿으면 물처럼, 바람에 닿으면 바람처럼. 흔들리지만 질기게,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맞아 맞아.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우리가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이미 나도 하나의 풀이거나 돌이거나 세상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나도 세상의 일부로 역할을 이미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잊을 때마다 마음 안에서 요란한 폭풍이 몰아친다. 왜 그럴까. 그것은 풀꽃과 인간이 가진 서로 다른 속성 때문일 것이다. 언어적 능력은 인간의 특별한 능력임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언어에서 파생된 생각들이 우리를 고통으로 이끈다. 우리의 행동은 `관계구성틀'이라는 상호관계의 망을 통해 주로 지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상이나 생각, 감정, 행동을 관련짓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 기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심리적 괴로움에서 놓여날 수 없다.

캠핑을 하러 가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닌데? 미리 알려주었으면 좋잖아.' 이러한 생각은 마음을 바쁘게 하고 서두르게 하며 화가 나게 한다. 그리고 감정을 수반하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캠핑을 하러 가기도 전에 부재의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불편감은 실재의 고통이 아니라, 생각이 만들어 낸 부재의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은 인간의 고유 영역인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간혹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에 몰입하면서 침잠한다.

내가 캠핑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캠핑에 대한 내 생각과 느낌의 늪에 들어가기를 멈춘 덕분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춘 덕이다. 이러한 마음의 작동은 수용전념치료(ACT)가 권하는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을 살기이다. 마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보다 세상을 보는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남천 풀다발'은 나를 무심천으로 이끈다. 이제는 그 길을 걸으면 작가님이 알려준 서른두 가지의 풀이 새롭게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떤지 그 마음과 함께 그 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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