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나도
사랑해 나도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6.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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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서울 S병원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중년의 부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갑작스런 비보에 남편은 발만 동동 구를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면회시간에 입실해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있는 아내의 손을 잡는 거 외에는. 하여 남편은 면회시간이 다할 때까지 온기가 남아있는 아내의 손을 쓰다듬고 어루만졌습니다. 그러다가 면회시간이 종료되면 검지로 아내의 손바닥을 세 번 꼭꼭 누른 후 나왔습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남편이 검지로 아내의 손바닥을 세 번 누르고 나오려고 하자 아내가 남편의 손바닥을 검지로 두 번 누르는 겁니다. 강도는 매우 약했지만 이를 감지한 남편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이후 아내는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고 병세가 날로 호전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주치의도 놀란 회생의 묘약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남편이 검지로 아내의 손바닥을 세 번 누른 것은 `사랑해'였고 아내가 남편의 손바닥을 두 번 누른 것은 `나도'였거든요.

그들은 그렇게 손가락으로 `사랑해' `나도'를 주고받으며 살았던 거지요. 소박하지만 진정어린 사랑의 손가락 대화가 희망을 쏘아 올렸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입으로 하는 사랑은 날아가지만 두드리는 사랑은 스며든다는 걸 웅변하며.

아무튼 `사랑해', `나도'는 짧지만 여운이 긴 메아리입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메아리가 바로 `사랑해', `나도'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메아리처럼 주고받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랑도 생명체와 같아서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일지라도, 죽자 살자 했던 연인일지라도 주고받는 사랑의 메아리가 시들해지거나 끊기면 불행이 싹트고 파탄이 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사랑해', `나도'를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사랑해', `나도'가 생활 속에 녹아있으면 삶은 탄탄대로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아니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니까요. 아가페적인 사랑이든 에로스적인 사랑이든 사랑은 모두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모르는 사람, 사랑을 못해본 사람은 불운한 사람입니다. 아니 가여운 사람입니다.

한 생을 살면서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누구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기적이나 진배없습니다. 부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람 중에서 내 남편이 되고 내 아내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매로 만났던 연애로 만났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사랑이고 결혼이니 그에 걸맞게 잘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잘 산다는 게, 사랑을 유지발전시킨다는 게 녹록한 게 아니라서 많은 훈련과 인내를 요합니다.

사랑은 `본능'이 아니라 `기술'이라 설파한 에릭 프롬의 말처럼 사랑의 기술을 익히고 확장시켜야 사랑의 참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에릭 프롬이 주장한 사랑의 필요요건 4가지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보살핌입니다. 꽃을 좋아하면서 꽃에 물을 주는 것을 게을리하면 사랑의 진정성을 믿지 않듯이.둘째는 책임입니다. 책임감이란 대응할 수 있고 준비됨을 의미하기에. 셋째는 존중입니다. 상대방을 나의 필요로 이용하려는 것은 욕망이지 사랑이 아니듯이. 넷째는 지식입니다. 삶에 유용한 지식 없이 사랑을 지킬 수 없기에.

그 정도면 사랑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여겨집니다만 여기에 감사를 더하면 금상첨화겠지요.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은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하찮게 여겨서 사랑이 감퇴하거나 시들해지기도 하니 매사에 감사하며 살 일입니다.

요즘 살인과 사고사와 자살이 난무해 세상이 몹시 어지럽고 혼탁합니다. 가정, 학교, 사회의 잘못된 사랑, 병든 사랑이 부른 난맥상입니다. 치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사랑으로.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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