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_앎&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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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6.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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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하지 언저리라 햇살이 뜨겁다 못해 따갑고, 땀은 풀먼지 흙먼지를 더해 찐득찐득하다. 간간이 비가 왔다지만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할 흙 대신 먼지가 풀풀 날린다. 작물은 더위에 기진맥진, 잡초는 따가운 햇살에 기세등등하다. 제대로 된 농법도 모르는 알량한 주인은 이런 꼴이 싫다. 작물의 영역에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는 양분과 수분을 축내는 잡초는 즉시 제거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당할 잡초가 아니다. 뿌리는 뽑히지만 그새 영근 씨를 튕긴다. 얼굴에 튄다. 햇볕에 따갑고 야무지게 영근 씨에 맞아 따갑다. 품격을 갖춰야 할 작물에 비해 품위는 없지만, 생존능력이 뛰어나다. 태생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잡초다. 애지중지 돌보는 작물에 대해선 김을 매고 웃거름을 주건만 어찌 그리 덜떨어진 놈처럼 나약하기만 한 건지? 내 취향의 먹거리를 주는 놈은 키워야 하고 아닌 놈은 필요 없으니 바로 호미질이다.

바닥에 납작 깔려 손에 쥐기도 힘든 비단풀, 건조한 흙에서도 물이 오를 때로 올라 통통하고 앙증맞은 노란꽃을 피우는 다육 쇠비름, 삐죽삐죽 기를 세운 끝과 마디에 명징한 물방울을 단 쇠뜨기, 호미도 튕길 딱딱한 땅에 어떻게든 버티려 당당하게 대를 올려 튼실한 지팡이 대를 자랑하는 명아주 등등 본연의 가치를 확고하게 가진 천덕꾸러기들 같으니라고. 잡초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최선을 다했다. 잡초는 초대받지 않은 영역에 뿌리를 내렸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흙을 깨고 있다. 진정 잡초답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받아들인 것이다.

정원과 밭의 경계가 모호한 외부활동의 일과는 축축하게 젖은 장갑이 절은 손에서 탈피되며 마무리된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눈에 막이 낀 듯하고 새벽이면 분주하게 움직이며 내는 새소리도 이른 시간에 시작, 전날 낮과 밤을 오가며 만들어낸 이슬과 상큼한 풀 냄새를 품은 새벽 공기에 더해 작지만 산만한 듯 청아한 새소리와 함께 하루를 채운다. 그리고 15시간의 긴 노동의 시간을 가로등 불빛의 알람에 맞춰 마무리한다.

LED가로등불이 차가운 색으로 길을 비춤에 하루 일과를 다한 햇살이 뉘엿 넘어가며 하늘을 물들인다. 새벽의 공기와 같은 색의 높은 여백에 낮은 구름은 농후한 먹색, 중간은 재색에 주황색을 터너의 낭만주의 화풍으로 가미하고, 가장 먼 붉은 바탕에는 작지만 명확한 원형의 점을 그렸다. 이제 어둠이 내린다. 온종일 분주하게 지저귀던 새소리도 멈췄다.

하루의 일과를 격려하고 배려한 쉼의 어둠이 아니다. 이제 잠자리에 가까워지는 자연의 어둠이 아니다. 알량한 힘으로 만들어 가는 커다랗고 두터운 틀로 만들어낸 어둠, 칠흑의 어둠이다.

자연의 어둠에는 창문 밖 풀벌레 소리와 풀내음을 들이는 바람이 있다. 발끝을 넘어 살포시 들어오는 바람에 홑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고단했던 것에 보상받듯 편안한 잠에 들게 한다. 황홀경의 동심과 별이 있는 고단한 내일이 있지만 `오늘 하루 고생했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어둠이다. 그러나 옥죄는 틀로 만들어진 어둠은 불안의 공포, 치가 떨리는 한파의 엄습이다. 별 볼일 없는 별 볼 수 없는 어둠이다.

지루하고 질퍽한 어두운 터널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틀의 두께를 두껍게 하다 보니 모두가 같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는 허리조차 제대로 펼 수 없는 숨 막히는 어둠이다. 이 칠흑의 어둠 안에서 손톱만 한 이끼 하나의 생명과 물방울 하나의 소리를 듣고 버틴다.

잡초는 포기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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