岐路의 유월
岐路의 유월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1.06.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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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 뒤꼍에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다.

해마다 봄이면 두둑두둑 흙을 돋워 고랑을 내고 온갖 초록 채소를 심는다. 햇살이 눈처럼 쏟아지는 아래 토마토 모종을 심고 이웃으로 감자와 상추, 가지도 몇 포기씩 들어 앉힌다. 겨우내 허전했던 담장 울타리를 채우는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강낭콩과 호박, 그리고 오이만큼 유용한 채소가 없다.

올해는 텃밭에 아이들과 직접 땅콩을 심어보기로 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에게 얻은 땅콩 씨앗 한 줌을 물에 하룻저녁 담가 충분히 물기를 먹인 다음 아침마다 마시는 우유팩을 화분 삼아 씨앗을 심었다. 일인 일 화분을 갖게 된 아이들은 저마다 화분에 애정을 갖고 관심을 표했다. 교실을 들고나며 이제나저제나 언제쯤 뾰족하니 눈을 내밀까,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하루에 예쁜 말을 열 개씩 해 주면 씩씩하게 잘 자랄 것이라고 했더니 어떤 아이는 이른 아침 등원하자마자 땅콩이 잠자는 우유팩 화분 앞에 와서는 `안녕! 잘 지냈니?' 하며 눈인사를 잊지 않았다.

하룻밤 이틀 밤 몇 날이 지나고 드디어 흙을 뚫고 땅콩 새싹이 나왔다. 아기 숟가락 같은 동그란 떡잎을 앞세워 연둣빛 색을 입은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잎에 색을 덧입히며 튼튼하게 자라주었다. 200mL 작은 우유팩에 땅콩 새싹을 키우는 과정은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아주 작은 콩알 하나를 어두운 땅속에서 싹을 틔우고 잎을 키워내는 과정이 나름대로 한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유월 첫 주, 절기상 씨앗에 수염이 달린 곡식을 파종하기에 알맞다는 망종(芒種)에 맞춰 땅콩 새싹을 텃밭으로 옮겨 심었다. 아이들의 고사리손이 모여 고랑에 미리 구멍을 내놓은 사이로 저마다의 땅콩을 심었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러운 손길로 행여나 다칠세라 새싹을 아기 다루듯 했다. 흙을 돋우고 물을 주고 잘 자라야 한다며 당부까지 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유월의 햇살만큼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언제부터인가 심고 키우고 가꾸는 재미가 생겼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키워보는 활동을 올해는 자주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텃밭 한 줄에 감자를 시작으로 땅콩을 새 식구로 들이고 해바라기 씨앗을 유치원 담장 아래 흩뿌려놓았다.

이제 하지(夏至)가 돌아올 즈음이면 아이들과 도란도란 텃밭에 모여 감자를 캐며 우리의 작은 손들이 모여 키워낸 수확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유치원 마당에는 해바라기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고, 가을이 올 때까지는 땅콩이 튼튼하게 잘 자라도록 아이들과 함께 물을 주고 오가며 예쁜 말도 많이 해 줄 것이다. 소담스러운 텃밭에서 식물을 키우고 자라는 기쁨을 알게 된 아이들이 유월의 그 어느 날을 먼 후일 좋은 기억으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생명이 움트느라 모든 대지가 분주했던 봄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만물이 성장해 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유월이다. 땅 밑으로 뿌리를 둔 식물들은 한층 뜨거워진 햇살 속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과실수들은 조롱조롱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할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자연의 성장만큼이나 한 해의 절반을 정산하고 마무리 짓는 기로의 유월이기도 하다.

새해 첫날 가슴에 새겼던 각자의 다짐에 흡족하다면 스스로를 칭찬하고 반대로 소홀했다면 후반기에 좀 더 분발하는 마음의 성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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