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일인칭 단수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1.06.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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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삶에 쉼표를 가진 적이 있었을까?

나는 가끔 내 마음과 머리에 미안하다.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알고 있어야 했고 그것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았을까? 내 인생의 소설은 이제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 주인공인 나와 주변 사람들 모두를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40년을 살아서 그런가 이제는 조금 데면데면한 삶을 살고 싶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의 자기 삶을 살고 남편도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 된다. 지금도 버릇처럼 다 알아야 하고 그들의 일을 내 일 마냥 좌지우지하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크게 숨을 쉰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 “기다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라고 말이다.

도서 `일인칭 단수'(무라카미 하루키 저·문학동네· 2020)는 단편 소설 여러 개가 묶인 소설집이다. 읽다 보면 저자의 취향과 습관이 잘 드러나 있어서 자전적 에세이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삶을 살아보고자 했던 나에게 책을 읽는 동안 참 위안이 되었다.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았고 이렇게 성장했구나를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 드라마틱하지 않았던 유년시절, 기억에 많이 남지 않지만 한두 번은 겪은 연애사, 그리고 평범한 가정의 남편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삶이 한눈에 그려진다. 나도 저자가 걸었던 삶의 궤적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는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뭔가 대단한 삶을 살 줄 알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은 모두 특별해 보여서 나도 마치 그들처럼 다이나믹하게 살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 줄 알았다. 그것이 당연한 순서처럼 느껴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자도 특별하지 않은 유년시절과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소설인 `일인칭 단수'에서 저자는 한껏 차려입고 술집에 가서 이름도 어려운 보드카 한잔을 마시다 그곳에 있던 여자로부터 “부끄러운 줄 알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일인칭 단수의 삶의 방향이 핑크빛에서 전혀 다른 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일인칭 단수의 삶의 방향은 바뀌지 않고 살 것이라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책의 앞부분에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중심이 여러 개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아느냐고” 소설 속 주인공에게 물었다. 중심이 여러 개 있다는 것 자체가 원이 아닐 것이고 둘레를 갖지 않는 형체를 원이라 단정 지울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해답이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삶이 아닐까? 다만 전지적 작가의 삶보다는 내 마음속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인칭 단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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