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숲
내안에 숲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6.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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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농막이 초록에 파묻힌다. 사방에 심겨진 층층나무가 여름엔 온통 신록으로 뒤덮는다. 밖에서 보면 우거진 숲이다. 숲으로 들어서면 깜찍한 비밀의 성 같은 우리 부부의 아지트가 나온다. 없어서는 안 될 쉼의 장소다. 치열한 일터에서 시달리다 주말에 여기에 오면 숨이 트인다. 도돌이표를 달리다 쉼표를 찍는다. 나도 푸른빛에 숨는다. 빈 숲이 되어서야 앙상한 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수현재다.

숲은 나무 혼자서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풀빛 물결이다. 바람이 불면 모두가 한쪽으로 몸을 뉘이어 파도를 만들어낸다. 숲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부추기며 부대끼면서 견뎌야 한다. 고요한 듯 보이지만 저마다 어울려 수런거린다. 여기에선 바람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숨을 멈춘다.

이 숲에서 내 안에 숲을 보았다. 벽기둥이 가는 곳마다 길을 막아섰던 무채색의 시간들이었다. 햇빛도 바람도 넘나들지 못하는 벽. 거기서 희망이 죽었다. 앞으로의 부푼 기대가 사라졌다. 허허한 황무지가 된 나를 경제적 압박감이 사정없이 조여 올 때마다 높아져만 가는 아득한 벽이었다. 하루는 미움이, 다음날은 원망으로 또 후회가 벽에 부딪혀 형해(形骸)로 쓰러졌다.

어느새 막막한 옥에 갇히었다. 높이 치솟은 벽은 탈출을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다. 더디게 가는 시간이 한없이 미움의 늪으로 흘러갔다.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펄. 진흙을 뒤집어써 진창이가 된 내가 무엇인들 온전했겠는가.

이럴 때 나를 이끈 숲이 수현재다. 그이가 7년을 가꾼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터를 잡았다. 빈 시간을 여기서 보내며 나무와 마주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둥친 가지에서 빨간 수액이 주르르 흐른다. 내 눈에는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나무라고 왜 아픔이 없을까. 땅내를 맡아 순화(馴化)하기까지 살을 에는 몸살을 앓는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불평하지 않고 한자리를 지키는 저들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곳이 돌밭이든, 진흙 속이던, 자신의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순명의 생을 사는 나무는 미움도, 원망도 거부하지 말고 허락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래야 자신이 보인다고.

30년이란 세월을 그이와 같이 보낸 지금에서야 보게 된 숲. 내 앞을 막아서던 벽기둥이 희로애락으로 얽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임을 본다. 그래 저래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꼭 행복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세상 숲이었다.

나무가 여름에 주는 그늘을 위해 엄청난 낙엽을 치우는 일을 감수한다는 그이다. 혜택을 누렸으면 불편함은 수긍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긍정의 힘이 좋은 기운을 불러온 것일까. 그이는 지금 인생의 전성기다. 가장 열심히, 활발하게 살고 있다. 그 덕분에 옆에 있는 나도 따라 목하 행복으로 충만해져 간다.

그이는 나를 지켜본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로 하여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마음이 어떠했을지 이제야 만져진다. 잘 견뎌낸 우리가 대견하다. 현재 찾아온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거봐. 참고 기다리니까 좋은 날이 오는 거지. 포기하고 도망갔으면 이런 날이 어떻게 오겠어”

“그러게 말이야. 가려다 내가 주저앉길 잘했지.”

밉살스런 그이가 지금은 사랑옵다. 이런 말을 웃으며 하는 날이 오다니 감격무지하다.

둘의 대화를 듣느라 바람이 가만가만 숨을 죽인다. 소소히 쏟아지는 햇빛이 잎 사이로 숨어들어 둘의 얼굴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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