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6.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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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벼락 거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찾아보니 그 뜻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

자신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다.?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폭등하자 이를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현금의 가치가 떨어져 자산 규모가 줄게 되었고 월급만 모으고 재테크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거지로 전락하여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 데서 나온 말이다.??

매달 받는 월급으로 열심히 벌어, 먹고 쓰고 살았던 터라 벼락 거지라는 말이 더 와 닿았다. 그냥 하던 대로 살았을 뿐인데, 이제부터 안 쓰고 모아도 살 수 없을 액수로 집값은 올랐고, 나야 이리 살다 가면 되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찌 사나 하고 걱정이 밀려왔다. 그때 그 집을 살걸, 그때 그 주식을 사둘 걸 등등 뒤늦은 후회로 뒤숭숭하다.

여우와 신포도라던가?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먹고 살만한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셋째, 자부심은 높지만 사람들이 절반만 알아주는 명예.?넷째,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다섯째,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연설 솜씨

우리는 플라톤 이래로 더 훌륭한 철학자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훌륭한 플라톤이 제기한 행복의 조건 첫 번째는 먹고 살만한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이다. 위로가 된다. 먹고 살만하다는 수준을 어찌 정의하는지도 문제겠지만, 현재 나는 먹고산다. 취미인 달리기를 위해 운동화도 한두 켤레 사고, 더위에 뛰려면 필요한 반바지와 티셔츠도 살 수 있다. 더 비싸고 더 좋은 신발, 더 고급 소재를 쓴 옷은 고민하다 내려놓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 내려놓음 덕분에 플라톤은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비교가 문제라고들 한다. 플라톤 행복의 조건에는 비교가 없다. 그저 절대적인 기준만 있을 뿐이다. 내가 먹고 살만한 수준에서 조금 부족하고,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데서 약간 부족하며, 사람들이 절반만 알아주고,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은 못 당하는, 그리고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언변까지…. 또한 그의 행복의 조건에는 늘 넘치지 않음이 있다. 청중의 절반에게는 호응을 얻을 연설 솜씨라거나, 두 사람은 아니지만 한 사람을 충분히 이길 체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절반에게 외면을 받을지라도, 두 사람에게는 질지라도, 부족한 용모라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강의 때문에 제주에 내려왔다. 적당한 항공권을 검색하고, 적당한 숙소를 정했다. 새벽에 약간 비가 내리는 해변을 달렸다. 약간 습기를 머금은 채로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달리는 나를 어루만지는 바람 덕분에 해변 달리기는 더 행복하다. 내 달리기 우상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달릴 때 기분을 비슷하게 이야기했었다. 와이키키가 아니면 어떤가? 오늘 제주 해변의 훈풍 덕분에 한껏 행복하다.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내 기준에서 말이다.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다. 아마 방학이라 더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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