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온도
우주의 온도
  • 한강식 속리산중 교사
  • 승인 2021.06.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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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한강식 속리산중 교사
한강식 속리산중 교사

 

# 비접촉식 체온계의 원리

얼마 전 코로나 백신을 맞고 열이 39도 가까이 오르며 꼬박 이틀을 오한에 시달렸다. 첫날에는 밤잠을 설치면서 수시로 비접촉식 체온계로 체온을 측정했는데 어렸을 적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끼우고 체온을 쟀던 기억이 생각나 아픈 와중에도 피식 웃고 말았다.

요즘에 많이 사용되는 비접촉식 체온계는 몸에서 방출하는 적외선의 양을 감지해 체온으로 나타낸다. 체온이 높을수록 적외선 방출량이 많아지므로 발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을 비롯한 모든 물체는 자신의 온도에 비례하는 세기의 빛을 주변으로 방출하는 성질이 있다. 고온의 물체는 X선이나 자외선과 같이 고에너지의 빛을 방출하고, 온도가 낮은 물체는 적외선이나 혹은 전파 형태의 빛을 방출한다.



#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온도가 측정된다?

앞의 설명대로라면 물체의 온도는 물체가 방출한 빛의 종류와 세기를 측정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물질이 거의 없는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의 온도는 어떻게 측정될까?

대부분의 우주 공간은 별이나 가스 등이 없는 진공 상태이다. 진공 상태에서는 물질이 없으므로 방출하는 빛도 없고 당연히 측정되는 빛도 없다. 즉, 진공 상태에서 측정한 우주의 온도는 절대 영도(0K, 약-273℃)에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1965년 미국의 윌슨과 펜지어스는 우주 전역에서 2.7K 온도(약 -270℃)의 빛을 발견했다. 우주가 마치 2.7K의 온도를 가진 물체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주는 진공인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138억년 동안의 운 좋은 여행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좁은 교실 안에 많은 수의 돌멩이를 무작위로 뿌려놓으면 돌멩이를 밟지 않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돌멩이를 10개씩 모아놓으면 그 사이 사이로 돌멩이를 밟지 않고 지나다니기가 훨씬 쉬워진다.

초창기의 우주는 매우 고온의 물질과 빛이 반죽처럼 뒤섞여 있는 혼돈의 상태였다. 특히 높은 온도로 인해 원자와 전자가 결합되지 못하고 뒤섞여 있었는데 이를 플라즈마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 원자와 전자들은 마치 교실에 무작위로 뿌려진 돌멩이처럼 골고루 퍼져서 주변의 빛을 흡수, 방출하며 빛의 진로를 방해했다.

하지만 우주 팽창과 함께 물질들의 온도가 점차 식어갔고 약 3000K의 온도까지 떨어졌을 때 원자와 전자가 결합하며`모둠'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모둠과 모둠 사이에 통로가 생겼고 반죽 사이에 가두어져 있던 빛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이때 빠져나간 빛 중 일부는 현재까지 약 138억 년간 `운 좋게' 다른 물질들과 충돌하지 않고 살아남아 우주 전역으로 퍼졌다. 다만 우주 팽창의 영향으로 빛의 파장도 함께 길어져서 빛이 빠져나올 당시인 3000K의 물질이 아니라 2.7K의 물질이 주변으로 방출한 빛처럼 관측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주의 온도를 2.7K라고 말하며 이를 우주 배경 복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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