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건 개였다
죽은 건 개였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6.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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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사랑의 본질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야 할까. 당해봐야 그 아픔을 알고, 먹어봐야 맛을 알 듯 사랑의 배면 또한 부딪혀 봐야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의 아픔을 한번쯤은 경험한다. 그것이 연인과의 사랑이건, 여타의 관계로 맺어진 사랑이건 말이다.

오늘은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이란 책을 읽었다. 서머싯 몸은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많은 작품을 쓴 작가이다. 이 작품 또한 중국을 배경으로 그려진 소설이다. 그는 양성애자였다. 하지만 인생 후반에는 동성애자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성편력이 만든 작품여서 일까. 작중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주인공 `키티'는 허영심 많은 엄마의 기대 속에 사교계에 등장하지만 결국 나이에 쫓겨 도피하듯 세균학자 `월터'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연회장에서 만난 매력적인 유부남 `찰스 타운센드'와 사랑의 불꽃을 태우다가 그에게 배신당한다. 키티는 부정을 알게 된 월터의 협박에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는 중국의 오지 마을 `메이탄 푸'로 끌려간다. 키티는 사방에 깔린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수녀원의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자처한다. 키티는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월터'가 실험도중 콜레라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그 후 키티는 편협했던 시각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광대한 자연 앞에서 용서라는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속박처럼 자신을 얽어맸던 잘못된 사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죽은 건 개였어'라는 말은 월터가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내 뱉은 말이었다. 이 말은 18세기 영국의 올리버 골드스미스가 지은 `미친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라는 시에서 나온 이야기다. 어쩌면 `죽은 건 개였다'라는 이 말이 작품의 전편을 관통하는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마을에 사는 한 착한 남자가 잡종개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그 개가 남자를 물자 사람들은 미친개에 물린 남자가 죽을 것이라고 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죽은 건 개였다는 내용이다.

이 시에서 마을 사람들은 남자를 `착한'이라고 명명했다.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시에서 과연 누가 착하고 누가 미친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던져 주고 있다. 미친`개'도 짐승이 아니라 그저 가엾은 `인간'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물이라 불리는 짐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다치거나 죽이지 않는 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착하'다는 남자가 물렸으며, 미친 `개'가 죽었단 말인가.

월터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키티'가 부정을 저지르자 죽음으로 내몰고자 했다. 그 방법으로 콜레라가 득시글거리는 `메이탄푸'로 데려 갔지만 정작 죽음을 당하는 건 자신이었다. 물론 월터는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기에 스스로 죽음을 맞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죽은 건' 월터 자신이었다. 한편으론 키티를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단죄는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보았던 문구가 스치듯 지나간다.

`사람들은 비이성적이다. 하지만 당신도 비이성적이다. 인간의 본성을 뿌리 끝까지 철저히 인정하라. 그러면 마음이 진정되고 남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건들바람이 휘휘 분다. 찌푸린 하늘에는 비는 내리지 않고 거뭇한 검버섯 구름만이 잔뜩 그려졌다. 오늘도 나는 평온한 여름의 하루를 떠나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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