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생(落花生)
낙화생(落花生)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1.06.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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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자연의 빛이 선연하다. 푸름이 덧칠된 소소한 것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나날, 발길을 멈추고 선다. 주말마다 오르는 증평의 삼보산. 등산로가 여러 군데지만 부러 이 길을 찾는다. 땅콩밭을 보기 위해서다. 어느 순간 산행보다도 몇 줄 되지 않은 땅콩밭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얼핏 보면 토끼풀처럼 생긴 땅콩이파리, 밭뙈기 끄트머리에서 한참을 바라본다.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더니 신록이 짙어지면서 땅콩도 농부의 손길 따라 하루하루 다르다. 뾰족하게 싹을 틔우더니 어느새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있다. 콩밭에 가서 두부 찾는다고 마음이 바쁘다. 땅콩은 한여름에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노랗게 개화한다. 그럼에도, 조급함이 앞서 봄부터 땅콩꽃이 피기를 고대하면서 일부러 찾는다.

먼발치 땅콩 밭이 보이면 어느새 입가엔 소환된 추억으로 엷은 미소가 인다. 지난해 이맘때지 싶다. 지인은 땅콩농사의 경험담을 넉살스럽게 들려주셨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담겨 있는 옹기처럼 푸근하고 후덕한 지인은 풋내기 농사꾼이다. 라일락꽃이 피고 지는 봄날, 농기계도 별로 없으면서 전원생활 할 요량으로 산 농지에 일손이 덜 간다는 땅콩재배를 하기로 하셨다.

농토랄 것도 없는 밭뙈기를 구부렁구부렁 생긴 그대로에 층층 두둑을 두어 다랑이처럼 만들었다. 구불구불 두둑한 밭이랑에 땅콩을 심으려 비닐을 덮었다. 호미로 비닐에 구멍을 내고 구덩이를 파 땅콩을 넣은 다음 흙을 덮어주며 직파를 했다. 그리하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다란 이랑에 땅콩을 심고 나오면, 뒤에선 온갖 새들이 분탕질하듯 새까맣게 달라붙어 땅콩을 파먹고 있었다. 제아무리 `훠이훠이'헛손질 해대며 쫓아도 소용없다. 외려 사람과 숨바꼭질하듯 낮게 날아가 주변을 맴돌다 심고 나면 뒤따라오며 또 파먹는다.

자연과 짐승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끝까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직파를 고집했으나 새들 앞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렇게 새들과 싸우기를 몇 번, 우여곡절 끝에 극약처방을 내려 땅콩에 조류기피 농약성분을 묻혀 직파했다. 자연 그대로 땅콩을 심으려 온갖 고생을 한 지인은 몸살로 며칠을 앓았다.

다신 땅콩을 심지 않을 것처럼 다짐하시더니 운명인 듯, 숙명인 듯 올해도 또 땅콩을 심으셨다. 본시 땅콩재배는 매년 이어짓기를 못한다. 혹여나 이어짓기를 하면 땅콩이 못난이처럼 쭈그러들고 씨알이 작아 흉작을 이룬다. 때문에 땅콩밭을 위아래로 격년제로 돌려짓기하느라 더 고단하지만, 여전히 땅콩농사에 여념이 없으시다.

땅콩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 제각기 다르듯 성장과정은 다른 작물과 사뭇 다르다. 보통 꽃이 피고 수정이 되면 꽃이 진자리에 열매가 맺혀 수확한다. 허나 땅콩은 꽃이 피고 수정이 되면 씨방자루가 아래로 향하면서 흙속까지 밀고 들어간다. 그 끝에서 꼬투리로 영근 게 땅콩이다. 때문에 꽃이 떨어져 생긴 열매를 낙화생(落花生)이라 부른다. 땅속에 파묻혀 살다가 속이 꽉 찬 씨알로 튼실하게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떨어진 꽃이 다시 살아나 굳센 의지를 보여주는 땅콩은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일깨워주는 교훈 같다. 우린 왜소하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체격을 가진 사람을 두고 땅콩이라 부른다. 땅콩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을 가만히 보면 당차고 자신감이 넘친다. 남보다 작지만, 더 강인한 정신력으로, 외모보다는 내실로 단단하게 변화시키며 자기개발을 한다. 작은 거인이다.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올곧은 내면은 변함이 없다. 난 하늘을 보며 되뇐다. 변화는 있게 변함은 없게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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