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한국땅! 대마도의 날을 아시나요?
대마도는 한국땅! 대마도의 날을 아시나요?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1.06.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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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이 역사적인 날이다. 그 중에도 6월은 특별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달이다. 추모하고, 슬퍼하고, 기념해야 할 날이 가장 많은 달이라 나도 모르게 6월이 되면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매년 제자의 묘지를 찾는 6월 6일이 있고, 6·10 만세운동, 6·15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성명, 민족의 비극 6·25와 개인적인 기념일 등. 그러나 6월의 많은 기념일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날이 또 하나 있다. 그날이 바로 6월 19일 대마도의 날이다.

대마도의 날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케시마의 날'조례를 제정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17년째를 맞이하는 이 날은 조선시대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현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서 출정한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한 것이다. 2010년 7월 마산시와 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하여 통합 창원시가 출범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조례를 계승해 매년 기념식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의 말도 안 되는 영유권 주장에 전직 구의원이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며 일본대사관 앞에 오물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인분을 투척한 후 현장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 일본은 즉시 반환하고 사죄하라”등의 내용이 적힌 전단을 나누어 주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고 한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강도 같은 논리를 펼치는 일본과는 달리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일찍이 대마도를 정벌하여 우리 땅으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대마도의 원정은 세종임금 때인 1419년에 이종무 장군을 삼군도체찰사로 임명하여 정벌한 일을 말한다. 그러나 대마도의 정벌은 이보다 앞서 있었던 고려 창왕 때와 조선 태조 때의 정벌까지도 포함한다.

고려 창왕 때(1389년) 박위 장군이 병선 100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하여 왜선 300척을 불사르고 왜구들을 진멸하여 우리 민간인 포로 남녀 100여명을 찾아왔다는 기록과 조선 태조 때(1396년) 김사형이 오도병마처치사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는 기록, 그리고 조선 세종 때(1419년) 대마도를 정벌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특히 세종 때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삼고 삼남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주고 마산포를 출발하게 하여 대마도로 진격시켰는데, 이 정벌을 일명 기해동정이라고도 한다. 이날을 기념하여 대마도의 날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좁은 해협에 위치하여 고려 말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고대 외교관계의 중요한 형식인 조공을 한반도의 나라에 바치고, 그 대가로 미곡을 받아 갔으며, 조정에서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대마도를 우대하여 주었다. 그러나 대마도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해적으로 돌변하여 우리 해안을 약탈하므로 조정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이를 정벌한 것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내부적인 어려움을 나라의 밖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일본의 내부적인 문제를 또 외부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다면, 그래서 독도를 계속해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면 우리도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아는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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