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보직 차별부터 없애자
진급·보직 차별부터 없애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6.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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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공군 참모총장이 옷을 벗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상관의 성추행을 신고한 공군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이 공군 참모총장의 사의를 전격 수리했다.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 일단락 하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국방부는 여군을 상대로 한 군부대 성범죄가 속출했던 지난 2015년 한 번 적발되면 중형과 퇴출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선언했다. 장교와 준사관, 부사관에 대해서는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 결과를 진급과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민간인을 책임자로 한 성범죄 특별대책TF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군에서 불거진 범죄들은 허다했던 국방부 종합대책이 무위에 그쳤음을 드러냈다. 지난해만 해도 군이 적발한 성범죄만 182건에 달한다. 여군의 90%가 웬만한 성희롱은 덮고 넘어간다는 조사결과를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급기야 군사경찰(헌병)이 여군의 방을 몰카하는 성범죄자로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범행을 은폐하고, 피해자를 회유·압박하고, 수사·조사 과정을 질질 끌고, 피의자 주장을 받아들여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하는 구태가 아직도 반복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성범죄를 중벌로 다스리겠다는 국방부 종합대책이 엄포에 그친 탓이 크다. 국방부의 호언과 달리 군사법정은 피의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기 바빴다. 2015년부터 지난해 중반까지 군사법원이 재판한 성범죄 1708건 중 10%에 불과한 175건만 실형이 선고됐다. 같은 기간 민간인 성범죄(1심 재판)의 실형선고 비율은 25.2%에 달했다. 기강을 먹고사는 집단인 군대의 법정은 민간 법정보다 엄혹해야 하지만 우리 군은 거꾸로 간다.

그렇다고 제식구 감싸기도 아니다. `남자 식구만 감싸기'에 다름아닌 편협한 온정주의가 범죄를 키웠다는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군대 성범죄는 민간 법정에서 다루도록 하자는 해묵은 여론을 현실화 할때가 왔다. 실패를 거듭한 국방부의 다음 대책은 총체적 무능을 시인하고 “조사와 재판을 민간에 맡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돼야 한다.

군대 내 여군의 위상을 돌아보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 양성 평등이 가장 공고한 벽에 부닥치는 곳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1950년 창설된 여군에선 51년만인 2001년에야 첫 장군을 배출했다. 간호 병과에서다. 전투 병과에서 장군이 탄생할 때까지는 2011년까지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대부분이 더 이상 진급이 보장되지 않는 2년 임기제 장군들이다. 그리고 2019년 육군에서 첫 소장이 배출됐다. 지난해는 달랑 1명이 임기제 준장으로 진급했을 뿐이다. 소장 진급을 한다 한들 `신체적 특성' 등 애매한 문구를 달아 여군의 보직을 제한하는 `국방 인사관리 훈령'에 막혀 진급의 필수 코스인 일선 사단장은 꿈도 꿀 수 없다.

미국은 육·해·공군에서 모두 여성 4성 장군을 배출했다. 그러나 우리 국방부는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 무기 개발을 놓고 각축하는 초첨단 시대를 맞고서도 여성에게 연대장까지는 맡길 수 있지만 사단장은 안된다는 낡은 기준을 부둥켜 안고 있다. 여성이 차별받는 조직에서 남성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배양될 리 없다. 여성 부사관, 그 중에서도 계급이 낮은 하사와 중사에 집중되는 비열한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 뿌리깊은 성차별 문화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을 새겨듣기를 국방부에 권한다. 여성 장군 임기제를 폐지하고 전투 병과 기용을 확대해 군대에 여군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도 국가적 망신을 피해 갈 방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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