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 참배의 아픔
국립현충원 참배의 아픔
  • 김춘자 전몰군경미망인회 충북지부장
  • 승인 2021.06.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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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춘자 전몰군경미망인회 충북지부장
김춘자 전몰군경미망인회 충북지부장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 미망인들을 모시고 (6월1일) 국립서울 현충원 참배를 다녀왔습니다.

71년의 긴 세월이 흘렀으나 그리운 임들의 모습이 가슴속에 남아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듯 많은 회원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꼈습니다.

차가운 대리석 묘비 앞의 푸르른 잔디와 여기저기 피어 있는 붉은 핏빛 넝쿨장미의 선명한 아름다움은 나라를 위해 부모 처자식을 뒤로한 체 치열한 전투지에서 전사하여 숨져간 20대 젊은 청년들의 피 끓는 애국의 혼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괴군의 남침으로 인해 자유 대한민국을 비극의 역사 속으로 몰아넣은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 온 지 어느새 71년 미망인에겐 아직도 전쟁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6·25전쟁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많은 전몰군경처가 충청북도에 아픔을 가슴에 안고 외로이 살고 있습니다.

신혼의 꿈도 잠시 20대의 젊은 아내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떠난 남편이 무사하기를 두 손 모아 빌며 귀환을 기다리는 동안 전사통지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20대 어린 새댁에게 닥친 불행을 어찌말로 표현할까요? 아들을 잃고 먼 산을 바라보시며 한숨을 쉬시던 시부모님, 남편이 남기고 간 어린 자식들을 위해 젊은 여인의 몸으로 각박한 생활전선에 나섰던 모진 세월이었고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는다는 현실을 혼자 견디며 살아오는 동안 아빠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어린 자녀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는 미망인들의 고통이고 아픔이었습니다.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가슴 졸이며 살았던 그 많은 세월 그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지나갔습니다.

이젠 자식들도 성장하여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대물림된 궁핍한 생활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면 부모로서 미안함에 소리없이 울었던 전몰, 순직 미망인들의 눈물을 기억해 주면 합니다. 아버지 얼굴도 기억지 못하고 사랑도 받아 본 적 없는 자식들에게도 아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지킨 평화롭고 발전한 대한민국, 아버지가 희생한 거룩한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 1명에게 국가유공자 승계가 이루어져야 함을 고대합니다. 끝으로 71년 세월을 눈물로 살아온 우리 미망인 회원들, 이제는 조금 편히 쉬며 사는 우리 미망인들의 남은 삶이 되도록 국가의 따뜻한 배려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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