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의 감정이 있는 가정
만개의 감정이 있는 가정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06.03 1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6월이다. 이는 5월이 지났다는 얘기다.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에 관한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다. 하여, 5월을 `가정의 달'이라 정하고 행사를 하며 기념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남녀가 결혼으로 가족을 형성하여 서로에게 적응하며 함께 꾸려가는 것이 가정이니, 어찌 평탄하기만 하겠는가. 존중, 편안함, 위로, 웃음이 있는가 하면 잔소리, 무시, 언어폭력, 싸움 등 행복과 불행이 공존 가능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건강한 가정을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취지로 가정의 달로 정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림책 <토라지는 가족/이현민/고래뱃속/2019>도 일요일 아침의 무덤덤한 가족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밥을 먹으려고 모두 모여 앉았어요. 어! 그런데……. 아빠가 토라져요. 엄마가 토라져요. 할머니도, 누나도, 형도, 막내도요. 모두요.'

창밖은 목련꽃이 만발한 봄이지만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에게선 냉랭함이 감돈다. 결국 밥도 안 먹고 밖으로 나간 가족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휴일을 보낸다. 그림도 정적이다. 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따라 세밀하거나 혹은 환상적으로 글과 만난다.

그렇게 하루 종일 토라져 있던 가족들은 배가 고파지자 모두 집으로 향한다. 집은 깃털 같은 할머니에게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조약돌처럼 앉아 있던 형에게 기운을 주는 그런 곳이다.

작가 이현민은 `가족들은 가깝고도 먼 곳에 있는 관계이기에 그 안에서 말 못할 수많은 감정들'이 생겨난다고 봤다. 그 감정은 뭔지도 잘 몰라 미숙하게 반응하고, 반복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가끔은 풍파를 일으키기도 한다. 애정으로 맺어진 가족이기에 그 안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특별하고 묘한 감정들이 깔려 있어 그러리라. 작가는 이러한 가족의 모습을 `토라지다'라는 단어에 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요. 집으로 달려가요. …… 그렇게 다 집으로 돌아가요.' 과감한 붓 터치와 색상은 역동성을 더해 독자들도 함께 달려가게 한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어요.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는 것처럼요.'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가정을 다스리는 것은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근심이 덜하지 않다.'라고 했다. 그만큼 가정은 가장 기초적이고 작은 사회단체지만 만개의 일과 만개의 감정이 있는 집단이라 그럴 것이다.

가정에는 중심이 필요하다. 누구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저럴 땐 엄마가, 이럴 땐 어린 아이가, 어쩔 땐 할머니가 혹은 반려 동식물이 그 역할을 한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쾌한 해결책이 주어지지 않아도, 편안하고 위로를 받는 것은 중심이 있는 가정이기에 가능하다.

가족이 있는 가정이기에 토라졌다가도 마치 태어나서 처음 먹는 것처럼 즐겁게 먹는 게 가능한 것 같다. 식구이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