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주말에는 본가에 들러 모내기 준비를 도와드렸다.
트럭을 타고 모판이 있는 논과 모내기할 논 사이를 오가던 중, 어머니가 조수석 창문 바깥의 한 논을 가리키며 모내기를 너무 엉성하게 해서 보기가 안 좋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는데 그것은 바로 논이 가진 지리적, 공간적 특성에 관련된 것이었다.
논과 논 사이에는 담이 없다.
자기 집 주변에 담을 치고 사는 폐쇄적인 사유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논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토지에도 있는 당연한 속성일지 몰라도 새삼스레 눈여겨보게 된 이유는 그날 일손을 도와드리기 며칠 전 동료와 출장을 가며 나눈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동료의 부모님도 벼농사를 매년 짓는데 자녀들은 벼농사가 수지도 안 맞고 힘이드니 그만 짓자고 만류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그 땅을 농사짓지 않고 내버려두면 동네 사람들이 흉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흉을 보는 행위의 바탕에는 말하자면 `농사는 성실히 지어야 한다'는 당위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농사를 짓는 데에도 모종의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121조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자유전은 농사를 짓고자 하는 자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원리이며 이는 농지를 투기 목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상위의 장치다.
이 뜻을 이어받아`농지법'에서는 농지를 취득하려는 자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를 만들었다. 최근 한 공기업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큰 문제로 떠올랐다.
투기 대상은 대부분 농지였다.
`농지법'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소유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오로지 소유권 이전에만 급급해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서마저 허위로 작성한 행적들도 드러났다.
실망스러웠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나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어른들이 어떻게 정식 서류에, 관공서에, 법치국가 앞에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국민 의식이 받쳐주지 않으면 법 제도의 그물망은 앞으로도 점점 촘촘해지고 그에 따르는 공적(公的) 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