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집 이야기
태양의 집 이야기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06.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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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하와이에 갔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도 좋았지만 그중 하나는 태양의 집이라는 할레아칼라 산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휴화산이라 하여 여느 산과는 분위기가 달랐을 뿐더러 기억을 되돌리자면 거대한 분화구와 검붉었던 잿빛들의 기운이 지금껏 눈가에 남아 있어서이다.

태양의 집은 유난히 해가 길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마우이라는 신이 낮의 길이를 길게 하고자 태양을 거기에 붙잡아두었다나.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이가 얼마나 더 했을까마는 일출과 일몰의 감상까지 놓칠 수 없는 조건은 관광객을 모으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발길 닿았던 시간이 한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기후에 옷깃을 감싸야만 했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생각의 가치가 살아서 움직인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할레아칼라의 모습이 어제 본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문득 삶과 밀접한 연관을 떠올리기 때문인 것 같다. 활화산의 작용으로 인해 식물과 동물이 살아가기 힘든 상황으로 변했지만 산의 표피는 여전히 새로운 숨소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은 마치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일어났던 파국의 일들이 진정되어간 이미지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격했던 활화산의 기운도 차츰 순화해갔으리라. 산 아래에서 보다 정상을 향해 가다가 둘러본 경관들이 더욱 그랬다. 그곳의 토착화 된 식물들이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화산의 작용으로 인해 생물이 소멸되었던 긴 시간이 짐작되었지만 그래도 용케 잿빛 돌 틈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최대한의 자생력이 동원되었지 싶다. 토질과 기후에 적합하도록 생김새들마저 특별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은검초였다. 은빛으로 가득 찬 희귀의 자태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조건이었을 터인데 지표면에 뿌리를 내리고 수십 년을 살아낸다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한낮의 햇빛을 받으면 은빛이 유난히 더해진다는 속성까지 경이로웠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죽어버린다는 전설과 같은 식물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이다.

휴화산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신의 작품을 한눈에 담았다기보다 어떤 진지한 울림이 된다는 사실이다. 거칠게 끓어오르던 분노와 격정이 가라앉은 산의 얼굴에서 평화가 뿌리내린 것처럼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고나 할까. 산이 지닌 갈구를 보았고 묵언에 찬 형태로 사람들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짚어보도록 해 준 것이 여행의 수확이라 하겠다.

태양의 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하늘 가까이 다녀온 기분이다. 산 그림자 속에 묻어나던 산의 호흡소리가 어제 일인 양 다채롭게 남아 있다. 비슷한 모양으로 나에게도 잠재해 있을,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분노가 있는지 들여다본다. 행여 있다면 휴화산처럼 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진 사화산의 기운을 지녔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몸과 마음이 토착화되어 삶의 모양 또한 안정적인 그림으로 그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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