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밥상은 사약이 될 수도
다음 밥상은 사약이 될 수도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5.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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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당내에서는 `보수정당사에 한 획을 그을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1등을 한 이준석 후보를 두고 나온 말이다. 혁명은 국민의힘에 국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30대 원내 교섭단체(정당) 대표가 탄생하는, 우리 정치 전반을 뒤흔들 대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처음 이 후보를 추동한 건 당 밖의 민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원의 지지는 저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당원 조사에서도 라이벌인 나경원 후보와 백중세를 이루며 큰 격차로 선두에 올랐다. 민심을 당심이 좇는 형국이었다. 그의 대표 당선을 점치는 쪽에서는 이런 추세를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의 당선을 장담할 수는 없다. 경선 룰을 포함한 본선의 여건이 예선과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예선에서 50%를 배정했던 일반 여론조사 비중이 30%로 줄어든다. 당 밖보다 당내 입지가 취약한 그에겐 불리해지는 대목이다. 당원 의사를 묻는 방식도 전화로 하던 예선과 달리 현장 투표로 진행한다. 당의 전통적 지지자나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당원들이 대거 참여할 공산이 높다. 지역구를 거느린 다선의 중진들이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원외의 이 후보보다 유리해지는 판이 된다.

예비경선에서 김웅·김은혜 등 젊은 후보들이 탈락하는 바람에 신진과 중진이 1대 4로 맞서는 구도가 된 것도 이 후보에겐 부담이다. 이미 이 후보는 상대 후보들로부터 정치경력이 일천한 풋내기에 계파정치의 장본인이라는 집중 공세를 받아왔다. 중진 후보 4명이 이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합종연횡'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돈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차려준 밥상을 걷어차는 데는 선수인 국민의힘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국민이 정치계에 줄 과제를 진보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에 부여했다는 점을 주목하기 바란다. 숙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더 높은 정당으로 국민의힘을 본 것이다.

민주당에선 지난 재보선 참패 후 초선 의원들이 `조국'을 입에 올렸다가 역모로 몰려 근신형에 처해졌다.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민주당에 전달한 메시지는 이후에도 철저히 외면됐다. 국민의힘이 이번만큼은 국민이 자신들에게 절체절명의 책무를 맡긴 까닭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국민의힘을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정치가 진일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무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준석이 무조건 제1야당의 대표가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정치의 변화를 갈구하는 유권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공정한 룰을 거치는 것이 우선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중진 후보들도 페어플레이로 본선에 임해야 한다. 공정한 기준과 깨끗한 경쟁 속에서 유권자들이 불을 지핀 혁명이 소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실패한 혁명이 되더라도 진한 여운을 남겨 새로운 혁명을 잉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모처럼 분출된 유권자들의 소망을 술수와 책략으로 짓밟는 배신은 없었으면 좋겠다. 30대 당 대표가 나온다고 타성에 중독된 정치가 바뀌겠느냐는 냉소도 들린다. 그러나 실질적 변화는 형식의 변화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재보선에서 국민으로부터 재기의 발판을 받았고 이번에는 구체적인 부활의 방식까지 선사 받았다. 이런 호사가 어디 있는가? 중진 후보들이 정정당당한 승부 대신 구차한 작당으로 이 후보를 주저앉힌다면 국민적 열망을 배신했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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