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추억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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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범 진천이월중 교감
  • 승인 2021.05.2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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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진천이월중 교감
강석범 진천이월중 교감

 

어릴 때부터 노래를 곧잘 따라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됩니다. 맹인가수로 잘 알려져 있는 이용복님의 명랑한 목소리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을~'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면, 그 노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봄날 햇볕을 한가득 맞곤 했습니다. 군대 간 삼촌방 구석에 세워져 있던 통기타 먼지를 털어내고, 당시 혼자 가장 먼저 익힌 곡이 김세환의 `토요일 밤에'라는 곡입니다. 시골의 동네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엔 어김없이 통기타를 들고나가 폼을 거나하게 잡고 매일 똑같은 곡 `토요일 밤에'를 쳐댔습니다. `긴 머리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오~ 토요일 밤에~'

그때 어설프게 연마한 나의 기타연주 기술은 80년대 대학에 들어가 더욱 세련되게 발전했고, 그 기술이 나를 얼마나 존재감 있는 청년으로 만들었는지,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나의 대학시절은 노래방이라는 문화가 아직 없을 때입니다. 학생들이 모이면 꼭 누군가 통기타 한 대쯤은 들고 나왔고, 당시 유행하는 가요나 팝송을 통기타로 반주할 능력이 된다는 것은 소위`인싸'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각종 페스티벌은 물론 MT 때, 나는 통기타 하나만으로도 환영받을 수 있는 유쾌한 젊음이 있었습니다. 왼손가락 끝은 수없이 반복된 기타 코드진행으로 딱딱한 뚝살이 훈장처럼 박여 있었고, 막걸리 두어 병과 기타 소리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닷가 MT 때는 유독 `밤배'라는 노래를 참 많이 했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검은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대학 1학년 종강 모임, 그날 나는 처음으로 가슴을 울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들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 떠들썩할 때쯤, 복학생 형님이 통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 조용히 반주를 시작합니다. 순간 겨울바람이 훅~ 들이닥친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모두는 무대를 집중합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 아…`아침이슬'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때론 모든 걸 내려놓은 허탈한 표정으로 떼창을 합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이 대목에서는 거의 전쟁터에 나아가는 전투병 모드로 변합니다. 김민기 `아침이슬'의 종반 절정부는 화려하면서도 크게 스케일을 넓히고 있고 마무리가 `아멘~'하는 찬송가의 마침 같아,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성배'였습니다. 동시에 절대 불러서는 안 되는 금지곡이기도 했죠.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목소리가 너무 크다며 낮추라는 몸짓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침이슬은 당시 대학생은 물론 전 국민의 대표 민중가요로 자리 잡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도 국민을 한데 모으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노래를 지은 김민기는 이 노래가 학생들의 시위에 사용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노래도 아니라고 밝혔지만, 만든 이의 뜻과 관련 없이 아침이슬은 그 시절 나의 청춘과 가슴을 뜨겁게 울렸고, 조용하고 묵직하게, 때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읊조리게 했습니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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