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가 제물이 돼선 안된다
지방대가 제물이 돼선 안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5.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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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우리나라 대학들이 올해 쓰나미를 만났다. 대입 수험생이 대학 정원에 미달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올해 정시모집에서 무려 162개 대학이 정원 미달에 봉착했다. 미달 정원이 2만6000명에 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험생 감소 추세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3년 후인 2014년에는 수험생이 12만명이나 부족해 질 전망이다.

지금의 저출산 기조까지 감안하면 대학들이 줄줄이 폐교하는 대재앙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직격탄은 비수도권에 소재한 지방대들에 집중되고 있다. 올해 미달 사태를 빚은 162개 대학 대부분이 지방대다. 지역의 입시 자원이 고갈돼 수도권의 잉여 수험생을 수혈받을 수밖에 없는 지방대로서는 피하기 어려운 재난이다. 특히 재정과 입지가 열악한 지방 사립대의 타격이 컸다.

갑자기 찾아온 쓰나미는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됐던 일이 예상보다 일찍 전개됐을 뿐이다. 2010년부터 대량 미달사태가 예견됐지만 정부는 언발에 오줌누기 식 처방으로 일관했다. 대학 평가에만 주력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제재를 들이밀어 정원감축을 압박했다. 한편으로는 지원을 미끼로 내걸고 정원을 줄이라고 유도했다. 대학 자율에 맡겨 찔끔찔끔 정원을 줄이는 땜질식 구조조정으로는 무더기 정원미달 사태를 막을 수 없었다. 대학들 역시 변화에 둔감했다. 설마 문을 닫기야 하겠느냐며 생존책 마련에 소홀했다.

지방대의 위기는 지역의 위기로 귀착된다. 지난 2012년부터 전국에서 14개 대학이 재단 비리와 경영난 등으로 문을 닫았다. 물론 대부분 지방대들이다. 후유증은 심각했다. 교직원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고 학생들은 전공까지 바꿔가며 타 대학으로 편입해야 했다. 무엇보다 `굴뚝 없는 공장'을 잃은 지역경제가 치명상을 입었다. 대학이 떠난 대학촌은 복구 불능의 폐허로 돌변했다.

지금의 상황이 방치되면 지방대를 죽여 수도권 대학을 살리는 적자생존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지방대가 소재한 지자체마다 곡소리가 날 공산이 높다. 지방 경제의 숨통을 터 주던 생명유지장치 하나가 더 철거됨으로써 지방 소멸은 더욱 빨라 질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줄을 풀어 모든 지방대를 구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옥석을 구분하는 선별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비리로 얼룩지거나 교육 역량이 떨어지는 대학은 자연 도태시키되 사활을 건 생존 전략과 의지를 갖춘 대학은 자립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지원하자는 것이다. 특히 소재지 지자체와 긴밀히 화합하며 생산적인 상생전략을 세운 대학부터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영동군이 그제 대학정책자문위원회를 출범해 눈길을 끈다. 전직 대학교수와 관련 단체장 등 15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군에 소재한 유원대학교와의 상생전략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발족했다. 대학의 정책 수립을 자문하고 필요한 지원을 심의·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두 기관은 유원대가 아산시에 조성한 제2 캠퍼스로 학과와 정원을 옮겨가면서 갈등을 반복해 왔다. 지난 연말에도 2021학년도 정원 조정을 놓고 충돌한 후 냉각 상태가 유지돼 왔다. 군이 대학정책자문위를 만들며 다시 대학에 손을 내민 셈이다.

박세복 영동군수는 “유원대의 문제가 곧 지역의 문제”라며 “대학과 지역이 함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묘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젠 대학과 정부가 호응할 차례이다. 모쪼록 영동군에서 동병상련의 지자체와 대학이 힘을 합쳐 공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멋진 사례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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