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감상하실래요?
시 한 편 감상하실래요?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5.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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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 겨울이 가면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봄이면 우리 마당에 수선화가 먼저 피어나고 수선화를 볼 때마다 정호승 님의 수선화가 먼저 떠오릅니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 전문



정호승님은 간결하고 평이하지만 절제된 언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그러나 시적 깊이는 넓고 깊어서 읽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는 평범 속의 비범함으로 애독자들이 열광하기도 하는 시인입니다.

쉬운 말로 썼지만,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시, 수선화도 그렇습니다. 시란 비유와 역설이 거의 전부라고 알고 있듯 이 시도 전체가 역설입니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이 시의 속살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목이 <수선화에게>인데 꽃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모양새 설명이라든지 색깔이 어떻다거나 뭐 수선화 비슷한 것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먼 그리스신화를 꺼내 와야 합니다. 에코 등 많은 요정의 구애를 귓등으로 흘리며 귀찮게 여기던 미소년 나르시소스가 우연히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뒤, 첫눈에 반해서 애타게 구애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는데 그 나르시스의 넋이 수선화가 되었다는 그리스의 신화,

나르시스는 우리나라에서는 自己愛 자기만족 등으로 해석되며 1914년 프로이트에 의해 정신분석학 용어로 사용되게 됩니다.

수선화의 꽃말이 곧 자기애, 자기도취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음을 전제하고 위 시를 한 번 더 읽어 보십시오. 울고 있는 자신을, 외로워하는 사람을, 조근조근 위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모두 외로움의 화신인 거죠.

시인의 눈은 깊고 먼 데까지 헤아립니다. 갈대숲의 도요새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심지어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니, 하느님까지 어찌할 수 없는 십자가 같은 인간의 외로움을 시인은 시 <수선화>를 통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것도, 가정을 이루는 것도, 하물며 예술을 하는 것도 모두, 외로움 때문이란 귀결이 됩니다.

참, 마음에 남았던 정호승 님의 시 한 구절 여기에 적습니다.

`사랑'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인데요,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왜 시인은 화려하고 예쁜 수많은 꽃 다 놔두고 봄날 잠시 밭둑에 지천으로 피었다 스러지는 냉이꽃에 비유했는지 한 번 생각의 나래를 펼쳐 보십시오. 나의 시가 날아들 것 같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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