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조선의 글자이야기
한국과 조선의 글자이야기
  • 이창수 시인
  • 승인 2021.05.0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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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창수 시인
이창수 시인

 

옛날 아득한 아주 먼 옛날 `파내류산 밑 천해(바이칼호) 동쪽 땅'에 파내류12연방을 한님이 오훈으로 다스렸는데 나누어 말하면 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구다천국·일군국·우루국·객현한국·구모액국·매구여국·사납아국·선비국·수밀이국이고, 역년이 3,301년 혹운 63,182년이라 하여 그 시작된 연원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통틀어 말하면 한桓국이라 했다.

사서에서는 파내류산을 지금의 천산이라 하고, 어떤 이는 천해 동쪽 땅은 오논강을 가리킨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셀렝가강 이라고도 하니 지도 상으로 볼 때 아마도 파내 류신은 바이칼호 동북에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고산준령에서 찾아야 무리가 없을 거 같다.

12 한국의 너비는 동서가 바이칼에서 오호츠크까지 3만리, 남북은 양자강 중 하류 남쪽부터 북으로 현재 소련의 부랴티야 와 자바이칼지방 그리고 흑룡강을 넘어 시베리아 일부를 포함하는 5만리라 하고, 그 땅에 말 타고 유라시아까지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같은 천산북로가 이어져 있어, 훗날 징기스칸이 기마병 1명에 말 3필을 주어 하루 5백리를 달려 유라시아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끈 길목이기도 하다.

마고 이후 사람은 뛰어난 두뇌와 왕성한 성욕에 힘입어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강마다 산마다 사람 없는 골짝이 없게 되니, 12부족에서 두 부족은 해 돋는 쪽으로, 한 부족은 해지는 쪽으로 살기 좋은 땅 찾아 삼족이 떠나고, 9족이 남으니 훗날 이를 구이九夷, 구려九麗 또는 9황64민이라 하고 주몽의 고구려도 `고구리'라 했다.

세월이 오래 지난 3세 단군 가륵(BC2,182년 즉위)때 1,700년 동안 만들어 쓴 문자가 너무 많아 외우기에 벅차서 열 집사는 마을에서도 소통이 더디고 백리 되는 나라에서는 글이 달라졌다. 이에 단군이 을보록을 불러 글을 다시 만들게 하여 정음 38자로 말글을 만들어 `가림토'라 하고 삼한이 모두 쓰게 하니 구려의 말이 통일되고 글 배우고 쓰기가 쉬워 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보부상들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드나들며 통역 없이 장사할 수 있어 편했다 하고, 관리들은 뜻글인 한자桓字를 말글인 한글에 섞어 써서 뜻이 선명하고 정밀해졌다.

세종실록 계해25년 12월초에 `10월초 친히 말글 28자를 정하시니 그 글자는 전자를 모방하였다'`원문; 十月上,親製言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하고, `훈민정음해례'정인지 서문에서는 “옛 전자를 본떠 소리로 인하여 음이 7조에 어울린다”하고 “천지인 삼극의 뜻과 음양 이기의 묘함이 포괄되지 않음이 없어 28자가 아주 교묘하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한나절이면 익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안에 깨우칠 수 있다”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글씨로 쓸 수 있다고 했으나 일제 치하의 조선어학회를 거치며 모음에서 아래아(·)와 자음에서 쌍ㄹ. 쌍ㅇ. 반시옷△ 등 4개의 글자가 소리 없이 사라져 세종대왕이 지은 28자가 24자로 변해서 많은 음을 쓸 수 없이 됐다.,

우리가 일본의 악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자면 일본이 엎질러 논 구정물을 우리가 닦아내야 한다. `훈민정음'도 되찾아 잘 닦아서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하고, 상고사도 제자리에 갖다 놓자면 정체성이 확고한 젊은 인재들의 육성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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