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5.0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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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알아야 깊이 느낄 수 있는 것, 미술이나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에게 루브르박물관 관람이란 走馬看山이나 다름없었다면 너무 비약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답게 건물부터 웅장하지만, 그 큰 건물을 꽉 채운 미술품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곳을 관람하고자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도 빼곡하게 대열을 이루어 물결처럼 밀려다닌다.

그런 곳은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작품이 걸려 있기 마련이다. 사진으로나마 자주 봐서 익숙해진 명화를 실제 작품으로 감상한다는 의미가 큰 곳이다.

가장 붐비는 곳이 모나리자의 미소 앞이다. 눈썹이 왜 없는지? 그리려다 잊었다던가 부러 그리지 않았다던가 또 신비로운 미소라고 하던데 미소를 짓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른 것도 체크 하면서 나는 모나리자의 미소를 다시 한번 뚫어지라 쳐다본다. 세상이 다 인정하는 명화라는데 그만큼의 감명을 받지 못함은 순전히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바닥인 때문이리라.

대열에 합류하여 지나치다 밀로의 비너스 상 앞에서 멈춘다. 비너스의 팔은 어찌 되었을까? 팔이 없는 것도 계산된 작가의 의도인가?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우아함과 단아함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이지만 하체를 휘감고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치맛자락은 묘하게 관능미가 느껴져서 미완의 완벽이라 한다던가? 하는 모순된 찬사를 받는다고 어디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림 앞에서 그간 얻어들은 사실을 그림에 대입해 보는 정도라 할까?

세 번째로 오래 머문 곳이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상 앞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교과서처럼 파고 읽은 관계로 너무나 생생한 피그말리온의 신화 때문이다.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우윳빛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한다. 자신이 원하면 많은 여인을 옆에 있게 할 수도 있는 제왕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유달리 여성 혐오자였다는 피그말리온, 그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기보다 끌과 망치를 들고 작업장에서 작품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예술가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예술로 승화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조각한 여인상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인 것마저 잊고 여인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만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시도 때도 없이 고백하는가 하면 <갈라테이아>라는 이름도 지어 부르면서 매일 꽃을 꺾어다 바치는 등 지극한 구애를 하다가 결국 신전에 올라 `내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빌고 빌게 된다. 그의 애절하고 끈질긴 기도에 깊이 감동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기에 이른다.

피그말리온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기도를 마치고 여인상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 피그말리온이 놀라서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자 조각상 온몸에서 점점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며 사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명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앞에서 나는 기적 같은 일, 불가능에서 가능함을 끌어내는 기적을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스승이 제자를 키울 때 너는 특별하다 우수하다 하고 예언처럼 거듭거듭 일러준다면 그 믿음은 배반당하지 않는다던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이 교육학 용어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알고 있다. 기대와 신뢰와 칭찬과 관심이 이끄는 초월적인 힘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기적을 끌어냄을 새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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