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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2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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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한국의 사회복지
이 태 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20년 전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국민의 노도와 같은 행진이 시가지를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열풍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된 정치 지형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분출을 낳는 계기가 돼 이후 민주화 과정의 견인체 노릇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런 사회의 역동성이 사회복지 발전사에 있어 진정한 추동력을 회복하는 계기였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진실의 일면이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 도입, 1989년 의료보험의 전국민으로의 확대, 1990년 영·유아 보육법의 제정, 1995년 고용보험의 도입 등 굵직한 복지제도의 발전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복지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성장지상주의라는 강고한 외피(外皮)는 1987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온기로 그리 간단히 제거될 것은 아니어서 YS정부까지도 진정한 시민의식의 성숙과 발로에 의한 복지권 확보의 역사가 본격화됐다고는 볼 수 없었다.

1997년 닥쳐온 외환위기의 광풍은 절대 고통을 낳게 했고, 대응방안으로써의 사회 안전망에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관심을 촉발했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는 정권의 수평교체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위기 앞에 국민의 삶은 얼마나 취약한 기반위에 놓여 있게 됐는지에 대한 처절한 각성의 기회를 만들어 줬다. 이는 정치적 민주화 다음의 과정이 바로 경제적 민주화와 함께 무엇보다도 사회적 민주화임을 각인시킨 시기이기도 했다.

DJ 정부의 역사적 성과를 담보로 시작된 참여정부,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동반성장', '사회정책의 경제정책화, 경제정책의 사회정책화' 등 의미있는 담론을 생산하며 복지분야의 일정한 진전을 기록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양극화와 사회양극화의 균열상은 진정됐다고 볼 수 없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속도의 노령화 앞에서 국가의 미래가 암울한 상황임을 생각하면 참여정부가 기울인 복지강화의 노력에 만족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임기말에 국민적 동의도 구하지 않고 거칠게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이면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자충수를 두는 현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아직 산업화 사회에서 소득중단을 유발하는 각종 위험 요인, 이른바 구(舊) 사회적 위험(old social risks)인 실업과 장애, 노령, 출산, 빈곤, 가구주의 사망, 출산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방어막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정보화사회, 개방사회, 노령사회 등으로 급속히 편입됨으로써 직면하는 이른바 신(新)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 즉 가족 내 부양기능의 약화, 신진기술 습득의 지체로 인한 노동기회 상실, 비정규직의 복지사각화 등을 동시에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한 힘든 여정(旅程)은 87년의 민주항쟁만큼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선명한 타도대상이나 선악으로 구분되는 피아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와 사회적 민주화로 완성돼야만 진정한 민주화의 역사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아무리 힘들지라도 가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우리 역사의 진보를 믿고, 민중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해 복지국가를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민주화의 기념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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