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자기 키 높이를 안다
나무도 자기 키 높이를 안다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1.04.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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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올해는 봄이 너무 일찍 서두른다. 여러 가지 봄꽃들의 피는 시기가 열흘 이상은 빨라지는 것 같다. 오래전에 묵은 밭에 심어 놓은 두릅 순이 너무 서둘러 올라왔다. 예전엔 4월 말 5월 초나 돼야 딸 만큼 올라왔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4월 15일 정도에 수확할 만큼 올라왔다. 그런데 올해는 그보다 더 빨라졌다.

4월 초에 한 두 개 딸만큼 크더니 일주일 사이에 훌쩍 자라 벌써 수확을 다했다. 게으른 농사꾼은 두릅 순 올라올 때를 기다리며 두릅나무 사이의 잡초도 제거하고 새 묘목도 심어야 하는데 올해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릅 순을 따다 보면 어떤 것들은 순에 난 가시도 손이 따가울 정도로 억센 것이 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순에는 거의 가시가 부드러운 털 모양이다. 도대체 같은 품종인데 왜 다른 것일까?

오랫동안 두릅 순을 따며 경험한 결과는 이렇다. 키가 작은 두릅나무는 대체로 순이 일찍 올라오며 붉은빛이 많이 나며 올라오자마자 활짝 벌어지고 가시가 많다. 키가 큰 나무는 순이 좀 늦게 올라오며 연녹색이고 늦게 벌어지며 가시가 거의 솜털모양이다.

그러면 왜 그런 차이가 날까?

키가 작은 나무가 순이 일찍 나오고 빨리 벌어지는 것은 키 큰 나뭇잎이 자라 빛을 가리기 전에 보다 빨리 잎을 내어 먼저 자라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까? 그리고 어린나무 순의 색이 검붉은 것은 초식동물을 속이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으로 보인다.

자신의 몸에 독이 없는 식물들은 다른 초식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래서 가시를 만드는데 키가 작은 나무는 줄기뿐만 아니라 새순까지도 억센 가시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키가 큰 나무들은 초식동물들이 자신을 해칠 수 없는 높이라는 것을 알기에 새순에 가시를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하고 굵기가 비슷한데 옆으로 기울어져 땅에서 높이가 낮은 나무의 순을 살펴보았다. 반듯하게 자라 지상에서 높은 곳의 순은 가시가 거의 없는데 기울어져 자라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새순은 역시 검붉은 색에 가시가 억세었다. 참두릅의 모든 품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품종에서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정말로 나무도 제 키를 알고 있는 듯하다.

두릅나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 엄나무다. 어려서 키가 작을 때는 가시가 많다. 그러다 어느 정도 높이 자라면 가시가 작아지고 듬성듬성 난다. 더 신기한 것은 자연에서 자란 것과 순을 따기 위해 재배하는 것에서 가시 모양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순을 따기 위해 낮게 키우려고 수시로 가지를 자른 엄나무의 가시는 자연에서 자란 것보다 엄청나게 빽빽하게 나고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크다. 식물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못할 뿐 그들도 엄청난 생각(?)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도 제 키 높이를 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 제 분수를, 제 키 높이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내 키 높이는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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