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빛깔
그리움의 빛깔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2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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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혜 식<수필가>

품새가 여유로운 한복은 심덕 좋은 맏며느리의 성품과도 흡사하다. '옷 입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사는 법도를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래서 옷을 일컬어 삶의 그릇이라고 표현하나 보다.

우리 조상은 입성에서조차 삶의 의미와 철학을 찾고자 하였으니, 그 지혜가 실로 놀랍다. 헐렁하고 풍성한 옷은 교통이 불편하던 그 시절 너른 천지를 다리품을 팔아가며 살기 위한 수단이었으리라. 그런 옷을 입음으로써 적으나마 힘겨운 삶의 여유를 누리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이야 활동하기 간편하고 유행에 따른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옷들이 대량 생산돼 우리들의 날개로 자리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호롱불 밑에 다소곳이 앉아 식솔들의 옷을 밤새워 바느질하던 여인네의 모습이 그립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인네의 자태를 가꾸는 옷으로 한복을 따를게 없는 듯하다. 어찌 여인네뿐이랴. 바지, 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를 갖춰 입은 남정네의 모습은 왠지 의젓해 보이고 정겹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명절 때 외가에 가면 큰 이모님은 늘 한복을 입고 사뿐사뿐 걸음을 내디뎠다. 그럴 때마다 한 복 겉섶의 고름 자락이 바람에 팔락거려 그 자태가 더욱 단아해 보였다.

흰눈이 솜이불처럼 온 세상을 뒤덮던 어느 겨울날. 그분은 먼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분홍색 저고리, 남색 치마에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 어린 눈에도 마치 한 떨기 꽃처럼 어여뻤다. 이모는 마당에 내려서서 눈 덮인 먼 산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그때 갑자기 눈가가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그런 이모의 태도에서 나를 두고 먼 길을 떠남을 눈치 챈 나는 그분의 두루마기 품 안을 와락 파고들었다.

"이모, 가지 마세요, 가시려면 저를 싸안고 가세요."

품 안에 안겨 울부짖자 이모님은 두 팔을 한껏 벌려 나를 얼싸 안았다. 두루마기 품 안이 그리 넓은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작은 몸을 싸안고 어디든 가도 될 만큼 그 품세가 무한해 보였다. 이모는 울며 매달리는 나를 품에 안고 목이 메는 듯 말을 간신히 이었다.

"너를 싸안고 갈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아홉 밤만 자고나면 다시 와서 너를 꼭 이 두루마기로 싸안고 가마."

입고 있는 두루마기 품을 더욱 크게 벌리며 슬픔에 떨고 있는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이모님은 당시 건강이 몹시 나빠 어느 산사로 요양 차 떠나는 길이었다. 나는 그분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린 마음에 순간 엄습해 왔었다. 평소에 기침이 심했고, 안색도 종잇장처럼 창백해서다.

그분은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주며 나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아주었다. 품 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나를 가까스로 달랜 후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분이 먼 길을 떠난 후 나는 매일이다시피 언덕 위에 올랐다. 이모의 모습이 멀어진 신작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모가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약속한 아홉 밤이 훨씬 지났건만 통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 분은 수 년 간을 산사에서 내려오지 못하였다.

이모를 기다리다 지친 나는 마을에서 한복 입은 여인네의 뒷모습만 봐도 그분인 줄 알고 허둥지둥 뒤쫓곤 했다. 나를 기다리게 한 이모님, 그분이 입었던 한복은 그 후로 내 가슴에 애틋한 그리움의 빛깔로 아로새겨졌다.

지금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의 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이모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는다.

올 명절엔 이모님이 즐겨 입던 한복을 입으며 그동안 메말랐던 마음자락에 아름다운 그리움을 고이게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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