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4월의 바다
선유도, 4월의 바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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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그날은 비도 오지 않았다.
벚꽃 잎 서둘러 무너지고도 채우지 못한 봄기운에 취해 문득 섬으로 나서는 길. 아침나절의 바다는 온전한 제 모습을 호락호락 보여주지 않았다.
차창을 내리니 바람 끝은 한결 부드럽고, 마스크를 뚫은 비릿한 갯내음이 호흡기를 거칠게 지나 함부로 오장육부를 들뜨게 하는데, 바다는 오만한 맨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공(人工)의 새만금 기나 긴 방조제를 지나 선유도로 간다. 바다 쪽으로 해무(海霧)가 깊다. 벽으로 가로막힌 새만금 너른 땅엔 아직 서해로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신음으로 남아 있고, 기어코 물을 밀어내고 차지한 육지엔 바다의 흔적이 희미하다.
선유도 가는 길. 나는 섬을 찾아가지만 결코 섬에 도달할 수 없다. 이안(離岸)은 허락되지 않았고, 배를 타는 대신 육지와 길게 이어진 연육교를 따라 섬으로 간다. 배를 타고 육지와 결별하는 이안(離岸)의 의식이 생략되었으니, 당연히 접안(接岸)의 아슬아슬함도 없이 가는 섬. 섬은 이제 더 이상 섬으로만 홀연히 남아 있지 않다.
육지인지 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선유도엔 그래도 원래의 바다가 남아 있다. 맹렬한 봄 햇살이 깊은 해무를 무너뜨리고 바다가 맨 몸을 드러낼 때, 나는 그 바다의 끝과 그 바다의 이어짐에 탄식한다. 거기 4월의 바다에서, 나는 뒤척이는 물결을 따라 날카롭게 봄 햇살을 튕겨내는 윤슬의 몸부림을 통곡으로 듣는다.
하필 그날은 비도 오지 않았고, 봄은 청명한데 모질게 남아 있던 꽃잎 바람에 날려 추락하는 4월의 바다는 언제쯤 슬픔을 걷어 갈 수 있겠는가. 선유도 서해바다는 7년 전의 항로를 따라 먼 남해 진도 앞바다로 어김없이 이어질 것이다. 물살 거친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배는 힘겹게 낯선 육지로 올라섰지만 그 깊은 바다에 잠긴 슬픔은 7년이 지나도록 더께가 얹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검고 힘센 수심의 아가리가/ 입 벌리고 있을 뿐인 사월 바다엔/ 나는 없다. 나를 찾을 길 없다/ 힘없는 시간의 난간마다 펄럭이는/ 빛바랜 노란 리본들만 펄럭일 뿐/ 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오히려/ 결코 피할 수 없는 큰 눈이 깜박일 뿐이다/ 이제 세상의 눈길이란 눈길을/ 하나의 망막으로 결집하는,/ 더 이상 그 어떤 예언도, 기도도/ 가닿지 못하는 시선의 사월의 바다엔 (임동확 <사월의 바다>전문)
어쩌다가 내가 4월에 섬을, 그리고 바다를 찾아갈 무모한 꿈을 꾸었는가. 상처는 지워질 수 없는 흉터로 남아 7년이 지나도록 슬픔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배를 타지 않고도 도달할 수 있는 곳을 고집스럽게 섬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어쩌다가 나는 차를 타고 육지와 섬을, 그리고 섬과 섬 사이를 잊는 연육교를 건너며 더 이상 육성으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세월호 희생자의 노래 <거위의 꿈>을 가슴 속으로 삭이고 있는가.
그로부터 어언 7년. 바다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고, ‘검고 힘센 수심의 아가리’보다 더 모질게 절망의 슬픔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탄식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묻어 둔 채 자식 잃은 어버이들은  7년 내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메마른 눈물마저 송두리째 담아 낸 4월의 바다는 말이 없다.
사람들이 살 수 있고, 또 살아가는 땅으로 이어진 섬, 선유도 작은 몽돌해수욕장을 걷는다. 짓밟힐수록 우르르 자지러지는 조약돌마다 서러움이 가득하다. 7년 동안의 통곡과 단장(斷腸)의 고통에 시달린 세월호 유가족의 심장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잃어버린 몽돌처럼 닳고 닳았을 것이나 절대로 순할 수 없다.
어쩌다가 내가 4월에 섬을 찾아가 촛불로 흘린 착한 사람들의 눈물과 자식 잃은 어버이의 통한이 담긴 바다를 만나게 되었는가. 7년이 흐른 사이 어떤 이들은 부끄러움 없이 더 높고 위력인 자리에 안착해 있는데, 서러움은 고단한 섬에 아직 갇혀 있다.
‘낳아 주셔서 고맙다’는 생일날 안부 전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요양원에 계신 엄마 목소리에 눈물 한 방울 보태는 내 4월의 바다.
그날 끝내 비는 오지 않았고, 바다는 그저 흐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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