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늘 즐겁다
시작은 늘 즐겁다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1.04.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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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저수지 옆을 돌아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양옆으로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새하얀 벚꽃과 달리 복숭아꽃은 분홍빛으로 만개하니 화사하고 예쁘다. 복숭아 주산지인 이곳은 요즘 가는 곳마다 복숭아꽃들이 지천으로 폈다. 예년 같으면 복숭아꽃 축제로 사람들이 몰릴 것인데 올해도 꽃들은 한적해 보였다.

복숭아 꽃길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간다. 세 번째로 방문하는 새 대상자의 집은 산속 동네에서도 맨 끝에 있는 외딴집이다. 한국에 온 지 2년차인 태국 결혼 이주여성이다.

처음 한국에 와서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라 꽤나 적적했을 거라 짐작이 된다. 말도 안 통하고 적막한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이제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여 남편과 아이까지 세 가족이 오순도순 지낸다.

초기 면접을 하고 한국어 모음과 자음을 시작했다. 외딴집의 방문자가 반가웠는지 두 번째 방문을 하니 한국어 기초 교재에 태국어로 발음을 표기해 놓았다. 태국어 표기를 보고 발음하니 더 수월하다고 한다. 학습에 열의를 보이니 반갑고 기특했다. 한국어의 듣고 말하기는 조금 가능한데 읽고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높임말 사용도 익숙하지 않았다. 어휘를 읽어도 의미는 모르고 글자만 읽으니 답답함도 있었을게다.

나는 태국어가 더 어렵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모국어인 태국어는 당연히 쉬운데 한국어가 어렵다고 한다. 한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나라마다 어려워하는 발음이 있다. 베트남 학생들은 `ㄴ/ㄹ' 받침의 발음을 어려워하고, 중국 학생들은 `어/오' 발음 구분을 힘들어한다. 지금 공부하는 태국 학생은 `ㅅ/ㅈ' 발음을 조금 혼동하는 편이다. 한국사람 중에도 일부에서는 `ㅅ/ㅆ' 발음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러시아 학생에게 러시아 인사말을 배워보니 한국어 자음+모음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자음+자음의 발음이 어려웠다. 러시아어는 자음+자음을 빠르게 이어서 발음해야 하는 데 나는 자음만을 연속해 발음하지 못했다. 반복해서 연습해도 아직까지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지 못한다.

가끔 동료들과 여러 나라 대상자들을 만나며 한국어 수업을 했으니 우리도 한두 나라 언어쯤은 익혔어야 하지 않았을까 얘기한다. 그들에게는 열심히 배우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이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책도 사고 인터넷으로 찾아 연습도 해봤지만 늘 맛보기로 끝나버렸다.

그동안 만났던 대상자 중에 태국 여성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두 명이나 만난다. 태국어의 어순은 영어와 같지만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없어서 어렵게 느껴진다. 성조도 5개나 된다. 앞으로 10개월 가까이 함께 하려면 나도 기본적인 태국어는 알면 좋겠다.

갑자기 태국어 습득이 숙제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태국어 글자를 보는 순간 내가 못할 것임을 알았다. 그림 같은 그 글자를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는 일은 설레고 시작은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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