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사과 본질을 보다
세잔의 사과 본질을 보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1.04.1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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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저 흩날리는 것은 벚꽃인가, 바람인가.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 바람이듯 벚꽃을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다. 나이 들수록 현상의 본질을 보는 시야가 입체적으로 확보된다. 오래전 영화 `관상'에서 김내경 역의 송강호가 한명회에게 던진 대사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 사람의 관상만 봤지. 시대를 못 봤다. 우리는 파도만 볼뿐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는 말처럼 현상의 본질까지 꿰뚫는 통찰에 이르기란 절대 쉽지 않다.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달리 표현하고 심지어는 말조차도 본말 그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발화자와 청자의 인식구조와 해독체계가 각양각색인 까닭이다.

독서논술 수업에서 늘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입체적 안목을 키우라는 것이다. 즉 현상을 보는 단면적 시각을 넘어 확장된 3D 형식으로 전체를 보라고 권면한다. 단면적 시각으로는 본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입체적 독서방식의 기본을 익히는 시간에 제시한 몇 개의 현상 중 파도를 일으키는 본질인 바람까지 접근했을 때 일제히 환호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 그럼 처음부터 나쁜 악마는 없겠네요? 악마를 만든 어떤 원인이 있을 것 같아요.”

그 원인을 묻자 극도로 나쁜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 나쁜 환경이 악마로 만든 원인이기 때문에 원인을 고치면 된다는 입체적 사고이다.

방과 후 교실만 들어오면 학생들은 말하고 싶어 아우성친다. 온종일도 모자랄 만큼 여기저기 기발한 생각들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아쉽다는 듯 시계를 야속하게 쳐다본다. 그런 모습들에 힘을 받아 수업 준비에 과잉 열정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다 바람의 본질을 떠올리고 그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조원재의 『방구석 미술관 1,2』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한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그림에 시선이 닿는다. 폴 세잔이라면 벚꽃의 속살을 어떻게 표현할까. 폴 세잔은 기존 모네식 인상주의에서 샛길을 튼 화가로 미술사의 새로운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다. 자연의 속살을 보는 것으로 그 본질을 파헤치려 한 폴 세잔은 사물이 지닌 불변의 것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작품 「사과와 오렌지(1899)」에서 `나는 겉이 아닌 속을 보겠다. 는 의도가 그 이유이다. 세잔은 모든 사물의 형태를 기본 도형으로 구축한다. 사과는 구, 주전자는 원기둥, 오렌지 그릇은 원뿔로 꿰뚫으면서 모든 대상이 지닌 색과 형태를 통해서 본질 표현에 집중하는 입체적 방식이다.

이처럼 사물을 건너뛰는 방식이 아니라 사물 너머의 본질을 보는 방식도 어쩌면 우리 삶 속에서 지향해야 할 필요 덕목 중 하나이다. 사물의 표면이나 보이는 현상만 갖고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본질과 그 속살을 놓치는 오류가 크기 때문이다.

세잔의 사과를 입체적으로 보라고 하면 내게 훈련된 학생들은 아마 붉은빛과 둥근 원을 만든 태양과 바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작가가 되겠다는 학생들 중 더러는 `태양의 심장이다. 까치의 뱃속이다.'하면서 은유적 표현을 악보처럼 늘어놓을 것이다.

파도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바람에 있고 사과의 원형을 만들어내는 본질이 태양에 있다고 통찰한 제자들이 훗날 성인이 된 세상은 우열을 가리는 우매함을 벗어나 천 개의 고원이 각자의 중심을 이루며 조화와 균형을 이룬 세잔의 사과 같은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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