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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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4.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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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물질의 소유로 기준 삼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계발 강연자들이 돈이 생기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품이나 보석보다 경험을 사라고 한다. 몸으로 겪은 일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추억할 수 있으니까. 중세 종교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법'편에는 모든 법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명시되어 있다. 신을 연구한 신학자들조차 행복에 대한 열망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행복을 삶에 구현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인류는 해왔다. 이렇듯 행복은 우리 모두의 화두다. 요즘엔 하도 행복이란 말이 흔해서 개인적으로 피로가 느껴진다. 꼭 행복해야 하나. 그냥 하면 안 되나 뭐 이런 반항심이 들곤 한다. 이것은 행복을 좀 더 자극적이고, 세고, 자랑할 만한 무엇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욕구는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런 면에서 <행복을 나르는 버스>는 행복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할머니와 어린 손자 시제이는 자동차가 없다. 그들은 매주 예배가 끝나고 데니스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시제이는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할머니와 약속을 했기에 함께 가기로 한다. 버스 안에는 문신한 백인, 안내견을 태우고 탄 시각장애인, 머리 벗겨진 배불뚝이 아저씨, 단발이 잘 어울리는 흑인 임산부 등 다양한 인종과 성별, 나이의 이웃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호기심 많은 아이 시제이는 시각장애인을 보며 저 아저씨는 왜 보지 못하냐고 묻자, 할머니는 “꼭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보고 만지고 소유해야 행복을 얻었다고,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세상은 코로 맡을 수도 있고 귀로 들을 수도 있다. 또, 무료급식소 봉사할 곳에 가까이 다다르자 부서진 보도블록과 망가진 문, 낙서로 뒤덮인 유리창과 닫힌 상점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여기는 왜 이렇게 더럽고 지저분한지 묻는다. 할머니는 하늘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단다”라며 무료급식소 위로 둥글게 솟아오른 무지개를 보여준다. 슬럼가에도 아름다운 하늘이 있고 무지개가 뜨고 있다는 것.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을 보는 눈은 가슴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하는 할머니의 마음씨가 참 좋다.

행복은 `느긋한 체념'에서 온다고 마광수 교수가 말했다. 허무주의적 인생관에 바탕을 둔 그의 저서 <행복 철학>에서는 허무를 넘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려면 적극보단 소극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조리한 삶의 전쟁터에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봤자 대박보단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게으른 휴식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은 일종의 낭만이다. 나는 그런 학생들의 `게으르게 학교 다니기'가 대견스러워 보인다” 괴변 같은 마교수의 말이 이제 와 귀에 꽂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이 부러워하는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애초에 글렀기 때문이 아닐까. 용기보다 비겁을 택하라는 말, 남의 눈치 보지 말라는 말, 나의 고독을 `남'에게 위로 받으면 그만큼 그에게 간섭받게 될 거란 아포리즘 등은 쉽게 납득 되지 않지만, 천편일률적인 행복이란 말에 갇혀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만을 좇았던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한다. 이제 `소확행'이라는 말도 싫증 난다. 포기를 전제로 한 말 같아 허탈하다. 행복은 은밀하고 주관적이다. 무엇이 됐든 그런 감정은 침해받을 수 없다. 특히 행복은 오늘의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지루하고 성실하게 루틴의 하루를 살아낸 오늘, 이것 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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