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이 들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4.1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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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한 사람이 대화를 하고 나머지는 듣게 된다. 한참을 듣다가 보면 아까 했던 이야기다. 고장난 레코드판을 틀어놓은 것처럼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된다. 슬그머니 짜증이 난다. 생산적인 카타르시스의 장이 되어야 할 술자리가 스트레스 쌓는 장소가 된다. 방금 전에 한 이야기를 잊고 자꾸 또 하니 정신이 망가진 것이 분명하다.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담배를 끊기로 작심하고 아침부터 참는다. 담배가 피고 싶다. 참는다. 30분 후 또 피고 싶다. 또 참는다. 손이 덜덜 떨린다. 볼펜을 입으로 가지고 가 깨문다. 근근이 하루를 버틴다. 다음 날은 하루 끊은 것이 아까워 절대로 피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을 한다.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집중이 안 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끊어야 하나? 글을 써야 하는 데 집중이 안 되니 글을 쓸 때만 피울까? 그러다가 결국 담배를 피워 문다. 그동안 못 피운 걸 보상이라도 하듯 더 피워댄다. 니코틴 중독도 정신병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아프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량주 병이 비어 있다. 아니 집에 와서 이걸 또 마셨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을 먹으면 술이 술을 먹는 단계가 나타난다. 술에 관한 한 통제 장치가 고장난 것이다. 이 정도면 알코올 중독이다.

대학교수가 하우스에서 도박을 한다. 하우스에서 타짜들에게 돈을 털린 대학교수가 꽁지 돈을 빌린다. 그마저도 다 털린다. 어떻게든 한판을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지만 냉랭하다. 어깨를 떨어뜨린 채로 힘없이 도박장을 나가는 순박한 교수가 안타까워 타짜(조승우 분)가 쫓아나가며 이런 자리에 다시는 출입하지 말라고 하면서 잃은 돈을 돌려준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교수는 조승우가 사라지자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하우스로 들어가 도박판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앉는다. 도박중독도 정신병이다.

영화 `땡스 포 쉐어링'에서 섹스 중독자(마크 러팔로 분)는 야동이나 음란물을 피하기 위해 티브이, 핸드폰, 노트북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5년 동안의 금욕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다른 중독자(조시 게드 분)의 멘토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섹스 중독에 빠질까 봐 여자 친구(귀네스 팰트로 분)와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여자 친구와 다퉈 헤어지고 나서 마크 러팔로는 망가지면서 여성을 추행하는 등 섹스 중독자의 증상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중독자는 한 번 통제를 느슨히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섹스 중독도 병이다.

잠을 자려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에 떠오른 하나의 생각이 새끼를 쳐서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생각하지 말고 자야지 하고 잠을 청하지만 오히려 눈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생각의 고리를 끊어보지만 원하지 않는 생각이 어느새 자리를 차고앉아서 나를 지배하고 있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때 생각이 이어지는 것도 고통이다. 불면증에 시달려 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담배는 끊어서 머리가 맑다. 이성은 졸업한 지 오래됐다. 이성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지 않아서 번거로움이 없다. 술을 먹으면 머릿속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즐기지 않게 된다. 알코올성 치매가 사라진다.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으니 게임이나 도박을 할 일도 없다. 자신을 들여다보면 언제 생각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하면 생각을 멈출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다. 아직 생각이 안 일어나게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일어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게는 할 수 있으니 생각의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난다. 노인은 몸보다 정신 건강이 훨씬 중요하다.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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