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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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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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극단이 대안이다
이 윤 혁<충북연극협회장>

1989년이니까 18년 전이다. 내 나이 스물아홉 살에 70대 노인 역으로 전국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그러더니 다음 해에는 스물여덟 살 먹은 여자 후배가 40대 중년 역으로 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시에는 40대 이상의 연기자가 없어서 20대 팔팔한 젊은이들이 중년 역과 노인 역을 연기했다. 연기자 입장에서야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돌이켜 보면 그리 바람직한 현상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역전됐다. 그 당시 활동하던 20대 연기자가 어느덧 40대 중·후반에 이르렀는데, 이 사람들이 20대, 30대 역할을 하고 있다. 연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2·30대 연기자가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연극인들끼리도 "양심이 없다는 둥 나이보다 젊어 보이니까 그렇다는 둥" 되지 않는 농으로 자조적인 웃음을 웃곤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TV를 비롯한 영상매체와 오락매체에 밀려서 그렇다는 이유를 대기도하고, 서울에 인력을 뺏겨서 그렇다는 이유를 대기도한다. 연극만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고, 지방에서 연극 백날 해봐야 연기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 그래도 서울이 낫겠지 하는 기대 심리에 서울로 진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유해진이나 김영호, 유순웅 같은 성공 사례도 있으니 틀린 말만은 아니다.

연기자나 연출자, 작가 그 외 전문적인 스테프를 1·2년만에 뚝딱 양성해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최소 10여년 정도 푹 절어야 그 맛이 나는 법인데, 작금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10년 뒤 충북 연극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전국연극제에서 또 대통령상을 받아오는 걸 보면 참 놀라울 뿐이다. 옆에서 지켜보지 않은 분들은 그들의 그 처절한 도전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고 견뎌내며 이룬 성과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청주에서도 공연되는 작품마다 관객이 5000명, 6000명씩 밀려들던 최고의 황금기가 있었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연극지망생들이 3년씩 극단 청소하며 어깨너머로 연극을 배우고 단역 하나 받으면 드디어 배우 된다고 행복해하던 기억은 격세지감이다.

그때로 충북연극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물론 연극인들의 자생적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도립극단과 시립극단 같은 관립극단 이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정책을 시행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데도 때가 있는 법이다. 대통령상도 받아왔으니 명분도 생겼고, 20년 이상 연극인들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충북연극이 너무 노쇄해졌다. 지금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어 다시 젊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교육받은 젊은 연극인들에게 관립극단에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면 40대가 20대 역을 연기하는 처절한 상황은 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존심 강한 연극인들의 경쟁심을 자극함으로써 민간 극단들의 분발을 촉발시켜 건강한 충북연극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북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희곡과 젊은 연극 인력 그리고 우수한 작품과 눈높은 관객을 생산해 내는 충북연극 생산기지로서의 도립극단, 정체되거나 사유화되지 않은 도립극단이 향후 10년의 충북연극을 앞에서 견인한다면 10년 뒤 충북연극은 반드시 도립극단을 능가하는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북연극인 모두의 염원이자 숙원인 그런 도립극단이 이참에 정말 현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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