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04.12 2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5학년 1반 빨리 들어와.”

운동장에서 놀다가 소리가 나는 곳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출장가신다던 선생님이 화가 난 얼굴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평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 언제나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선생님이어서 모두 겁을 잔뜩 먹은 상태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반장, 부반장, 분단장 앞으로 나와.”

머뭇거리면서 나가자 선생님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이놈들아. 아침에 출장가려고 하다가 안경에 아침 자습은 안하고 딴짓하는 것이 보여서 학교로 왔다. 선생님 안경은 너희들이 멀리 있어도 모두 보인다.”

잠시후 선생님은 예정대로 출장길에 올랐다. 그 후로는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도 늘 공부는 물론 모든 학교생활에 게으름을 피우지 못했다. 선생님이 안경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테니까.

선생님은 5학년과 6학년 2년 동안 담임을 맡아 열심히 공부할 것과 사람 됨됨이에 신경을 쓰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공부하는 시간 이외 의학 건강상식에 관해서도 말씀을 해주셔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면서 충주에 있는 병원에서 환자진료도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사는 집이 우리집 이웃에 있어서 마을에서 자주 만나게 되어 자연히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어떤 날은 골목에 있다가 멀리서 선생님이 오시면 괜히 혼이 날까봐 숨었다가 선생님 안보일 때 다시 나와 놀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어떠한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이 끝나면 다른 아이들이 청소를 할 시간에 선생님 집에 가서 사모님이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다 드렸다. 도시락을 가지러 가면 우리집에 들러 어머니가 화로불에 볶아 주신 밥을 먹을 때도 있어서 한편 즐거운 기분이 들 때도 여러 번이었다.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선생님은 항상 건강해 보이셨는데 어느 날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집 친구 성안이와 선생님 문병을 갔다. 늑막에 물이 고이는 습성늑막염으로 한달여 간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께 빈손으로 얼굴만 뵙고 나오는데 집에 갈 차비를 주면서 고마워 하셨다. 선생님은 시내가 멀어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한 의사셨다. 어느 누구든 어디가 불편하다고 하면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보살펴 주어 주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우리반 63명 중 중학교에 입학한 인원은 7명에 지나지 않았다.

졸업식날 성적우등상을 받고 쓸쓸하게 집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내는 날이 거의였다.

선생님을 본 날이 얼마나 되었을까 했을 때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전근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나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가금국민학교를 졸업한지 많은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음성고등학교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세월이 가고 또 간 늦은 날에 충주 교현동에 살고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교육청에 알아본 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을 찾아 뵙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전화로 만난 데에 의미를 두자면서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외로움의 세월을 지내오신지 꽤 오래되어 그러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전국으로 여행겸 돌아다니다가 4개월에 한 번 집에 온다고 하셨다.

여운창 선생님.

그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어린 날의 은혜를 내내 마음 한켠에 담아두고 있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