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흔적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4.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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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햇살이 화하다. 들로, 산으로, 나무 끝에 호듯호듯 내려앉는다. 당양한 볕 살이 메말라 보이던 나무에 초록의 생명을 불어넣는다. 가지에 순을 틔우고 꽃잎도 부신 눈을 뜬다. 봄은 무채색 위에 고운 색을 덮어 환하게 변신 중이다. 세상은 지금, 겨울의 흔적을 지우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전령사인 꽃들이 다투어 황홀경을 펼친다. 이 유혹을 외면하지 못한 상춘객들은 눈치를 보면서까지 꽃구경에 몰린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도 소용이 없다. 누구인들 주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지 못해 안달이 나 자꾸만 곁눈질이 간다. 쉬 뿌리치지 못하는 지독한 유혹이다. 어쩌면 한때 꽃처럼 기억되는 시절의 아쉬움을 달래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계절은 겨울의 자취를 감추고 봄으로 흘러간다. 뒤를 따라 여름을 거쳐 가을로, 또 겨울로 오겠지만 인생의 계절은 돌아오는 법이 없다. 기억의 편린들이 무시로 다시 나를 불러낸다.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는 삶의 흔적이다. 어인 일인지 잊고 싶은 생각일수록 더 선명해진다. 마치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려 애쓸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펄 같은 그리움처럼 말이다.

남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들이 있다. 극한 직업인 특수청소전문가다. 삶의 흔적과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이들이다. 현장을 보면 집주인의 삶이 유추된다고 한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 언젠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장애를 가진 그들을 대신해 청소해 준다. 쓰레기 더미의 좁은 방에서 득실대는 벌레와 몇 톤의 오물이 나온다. 악취와 세균을 소독으로 마무리하여 지저분했던 삶의 자취를 없앤다. 이들의 강박을 깨끗이 치워주는 일이다.

죽음의 흔적을 없앨 때는 제일 먼저 망인을 향한 묵념으로 애도를 표한다. 고독사(孤獨死)는 한겨울에도 집안의 구석구석에 차가운 기운이 덮여 썰렁하니 아무도 드나든 표시가 없어 안타까워한다. 경험으로 보면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가난과 외로움은 오랜 벗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런 일을 마치면 인생이 덧없어 허탈하다는 그들이다. 고독사를 치른 날은 짙은 외로움이 폭풍으로 몰려와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사고현장에서 끔찍한 광경을 접하는 날은 내내 피비린내가 코끝에 남아있어 아무리 손을 씻어도 배어 있는 듯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는 말에서 고통을 본다.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다. 죽음이 늘 묻어 있는 손의 트라우마가 생겨 피아노를 배운다는 이도 있다. 손끝에 더듬어지는 암울을 멜로디로 밝게 승화시키고 싶은 마음인 듯하다.

산다는 건 하루하루가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물건을 만져도 손자국이 남는 법인데 사람과의 관계는 오죽하랴. 남에게 심겨진 인상이 오래 남기도 하고 금세 잊히기도 한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지로 잊고 싶은 이도 있다. 누군가에게 각인된 무늬가 다르기 때문이다.

머물던 자리를 떠난다 하여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 새로 근무하는 일터에서 온 손님들이 전보 간 직원에 대해 묻는다. 찾아도 없으니 걱정스런 표정이다. 새로운 근무지를 전하니 안부를 궁금해한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 힘들겠다고 염려하는 모습도 본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의 나의 흔적은 어떨까.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문득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는 동안은 누군가에게 잊힌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곳에 은은한 향기로 배어 있으면 좋겠다. 산책길에 눈에 들어온 갈대. 다음해 봄까지 마른 대궁을 길게 올리고 바람에 일렁이고 있는 질긴 미련처럼 비친다.

이제 집착을 버리는 연습이 필요한 나이. 이 세상 스러지는 날, 겨울이면 땅으로 사그라져 흔적 없는 한해살이풀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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