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름 키퍼 `사후기억'의 예술
안젤름 키퍼 `사후기억'의 예술
  • 이상애 미술평론가
  • 승인 2021.04.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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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상애 미술평론가
이상애 미술평론가

 

홀로코스트!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에 의해 자행된 600만 명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사고 잔인한 사건으로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고 자행된 대참사!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해인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난 안젤름 키퍼는 독일의 2차대전의 도발에 대한 자책감으로 나치에 의해 자행된 자국의 역사를 수용하는 내용을 작품 경향으로 삼아 국제미술계에 파문을 던진다. 그의 작품 <술라미트>는 그 하나로서 2차대전이 종전된 지 38년 후인 1983년에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은 `시와 회화'라는 자매예술에 예술가의 책무를 안착시킨 작품으로 유대계 시인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의 한 줄 후렴구인 `잿빛 머릿결의 술라미트'를 인용하여 제작한 것이다. 술라미트는 구약성서의 아가서에 나오는 솔로몬이 사랑한 자줏빛 머릿결을 가진 유대 여인 `술람미'이다.

이 그림은 건축적 구조-나치의 죽음 숭배에 바쳐진 파시스트 건축물-, 공간 안쪽에 있는 7개의 불꽃이 있는 화덕-유대인의 시체를 소각했을 법한 죽음의 화덕-, 그리고 좌측 상단에 휘갈겨 쓴 `Sulamith'-희생자인 유대인을 상징-라는 텍스트가 주요 세 가지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다. 시의 은유적인 인용문과 나치 시대의 건축물, 그리고 회화의 영역이 동시에 담겨 있어 보는 것과 읽는 것, 회상을 동시에 담고 있다.

첼란이 그의 시 <죽음의 푸가>에서 은유적인 표현들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잘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키퍼도 <술라미트>에서 아우슈비츠에서의 대학살에 대한 어떠한 직접적인 재현 없이도 가해자의 장소에 피해자를 안치시킴으로써 인간 고통의 잔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관람자는 부재의 존재자인 `술라미트'뿐 아니라 결국 홀로코스트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부모를 잃은 또 다른 희생자였던 시인 첼란과 마주하게 된다.

예술은 역사적 사건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이 되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후작용'은 트라우마의 사후적 발현으로서 과거의 사건으로 소급하여 그것을 증거, 재고찰하게 된다고 한다. 종결되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며 기억으로 전승되고 있는 트라우마 사건인 홀로코스트! 키퍼의 <술라미트>는 기억이 부재하는 가운데 전승되는 트라우마의 사후적 발현인 `사후기억'-직접적 기억의 부재-이 `소급작용'에 의해 시각적으로 표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후기억'을 통한 시각표상은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아가는 사회·문화적 표상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장을 형성하고, 트라우마의 `훈습'을 시도하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깊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는 끝나지 않은 홀로코스트 트라우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어지는 세대에게 다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고무시키고 `사후기억'을 형성하도록 한다. 따라서 예술적 표상의 영역은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현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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