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다
길을 잃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04.07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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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원칙이 무너지면 길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왜 가야 하는지 목적이 사라진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로 우리 사회는 1년째 헤매고 있다.

서민은 삶의 길을 잃었고, 청년은 꿈을 잃었고, 청소년은 배움의 길을 잃었다.

지나가면 다 길이고 없으면 만들 수도 있는 게 길이라고 하지만 삶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기업은 장기화한 경기 불황에 존폐를 걱정한다. 대학 역시 학생 수 감소와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3주기 기본역량진단 평가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교실은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을 병행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혼란스럽다.

그런데 정작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정치권은 살 판 났다.

4·7 보궐선거도 마치 대통령 선거를 치르듯 치열한 결집력을 드러냈고 당연히 상대를 향한 비방도 빠지지 않았다.

살 맛이 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거창하게 내건 후보자들의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뇌리에는 생태탕, 페레가모만 남았다.

10여 년 전 신었다는 신발의 색깔과 외국에 소유한 아파트 평수까지 들춰내 셜록 홈스도 두려워할 집요함으로 표심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정치권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정치인이 갖춰야 할 6심(초심, 관심, 진심, 중심, 양심, 민심)은 없고 3심(욕심, 한심, 의심)만 가득찼으니 그럴 만도 하다.

LH 사태를 두고도 서민들은 박탈감에 주저 앉았는데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윗물은 맑아졌는데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많이 남아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서민이 바라보는 윗물은 고여 있는데 정치인이 바라보는 윗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LH 사태를 두고 정치권은 모든 공직자의 재산 공개 의무화 카드를 내놓았다. 역시 이슈는 이슈로 묻으려 한다. 들끓는 민심을 잠시나마 가라앉힐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일 것이다. 정치권이 이럴진대 국민의 삶이 나아질 리 없다.

청소년들은 교실에서 꿈을 꾸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청년들은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에 매달린다. 학벌이나 학력 차별 없이 시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다. 빛나기는커녕 빚으로 청춘을 낭비하기 싫어서다.

최근 모 중학교 교장을 만났다.

그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중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해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 특성화고 진학과 졸업 후 취업 현황 등을 중심으로 특강을 했다. 문제는 다음날 터졌다. 그는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이 학부모는 “특성화고 가면 취업도 잘된다고 교장 선생님이 얘기해 아이가 특성화고를 가겠다고 하는 데 애들한테 무슨 말을 하셨기에 이러냐”며 교장에게 따져 물었다. 학부모 전화를 받고 그 교장은 자괴감에 빠졌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성화고 진학의 장점을 알려준 것이 아이를 망친다고 질책받는 세상이 됐음을 깨달았단다.

명나라 말기 문인 홍자성이 그의 저서 채근담에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우리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들이대고, 자신들을 향해서는 춘풍을 넘어 꽃 바람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안갯속을 걷고 있는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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