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벚꽃 엔딩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4.0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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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이번 학기 휴학 중인 딸아이가 아쉬운 듯 말했다. “나 때는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고 했었는데….”

서울을 기준으로 대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준비할 무렵 화사하게 피어나는 벚꽃, 그 환한 벚꽃을 아쉬워하며 붙인 벚꽃의 꽃말, 중간고사. 그런데 올해는 벚꽃 개화일 관측 이래로 가장 빨리 벚꽃이 피었다 하니 그 시기가 중간고사를 무려 한 달이나 앞둔 시점이었다.

지난 주말 주중에 놓친 늦은 벚꽃 구경을 나갔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미 많이 떨어져 버린 벚꽃은 그야말로 벚꽃 엔딩. 끝이었다. 흔히 쓰는 끝이라는 말은 사납고 모진 이별을 의미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일을 개운하게 마무리한 상쾌한 기분을 이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들은 가장 아름다운 끝은 한 노교수님의 퇴임사에서였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낱말보다 `끝'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합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마지막을 `시간상이나 순서상의 맨 끝', 끝은 `시간, 공간, 사물 따위에서 마지막 한계가 되는 곳'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시간의 흐름이 마무리된 것이며, 끝은 공간적 전개의 가장자리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리를 공부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동안 마지막이라는 낱말보다 가능한 한 끝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 것은 이처럼 `끝'이 공간적 개념어이기 때문입니다. 공간은 지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지리적 용어를 쓰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 번도 끝이 공간적 개념어라고 생각지 못했던 내게 `끝'이라는 말은 새롭게 다가왔다. 벚꽃에게 공간은 무엇일까? 벚꽃은 벚나무 가지 말단의 꽃눈 속에서 겨울을 났다. 온전한 꽃잎을 얇은 꽃눈 껍질 속에 품고 영하 19도의 추운 겨울을 견뎌낸 것이다. 따스한 봄볕에 꽃눈 껍질이 벗어지고 드디어 무한한 공간 속으로 꽃잎을 열었다. 그러다가 제 할 일을 다 한 꽃잎은 공중으로 이파리를 흩어버리고는 결국 드넓은 대지 위에 조용히 몸을 누인다. 벚꽃은 좁은 꽃눈 속에서 무한한 공중을 향했다가, 자신의 근원이 되었던 벚나무 뿌리 근처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퇴임사에서 교수님은 교육연구자로서 거의 변경에서 살아온 인생을 고백하며, 스스로 선택한 그 변경에서의 삶은 고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서만 가능한 다른 세계와의 자연스러운 통합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또한 변방의 삶이 가지는 또 하나의 재미는 자신의 끝을 계속 밀고 앞으로, 옆으로 확장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고 덧붙였다.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 만나면서 계속하여 변화하는 어떤 것을 찾아가는 답사, 그것이 자신의 공부였노라며, 그리하여 퇴임 후 그의 새 연구실 역시 그 변경, 곧 `끝'에 있다고 마지막 인사를 가름하였다.

매년 2월 말과 8월 말 여러 정년의 인사를 듣게 된다. 정년은 아쉽다. 두고 가는 것,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인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퇴임 후 `끝'에 있게 될 새 연구실을 고백하는 그 인사는 달랐다. 기분 좋은 설레임, 이질적인 세계와 전혀 다른 통합을 도모할 기회, 나에게도 찾아올 새로운 연구실인 `끝'을 기대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

벚꽃이 끝나야 벚나무 새순이 돋아 버찌를 살찌우고 여물게 한다. 또 벚꽃이 끝나야 라일락도 피고, 철쭉도 핀다. 벚꽃 엔딩이야말로 정말 새로운 시작이다. 백신 수급이 어렵다지만, 코로나19 엔딩도 뜨겁게 염원해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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