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에 푹 빠진 호박벌처럼
꿀에 푹 빠진 호박벌처럼
  • 박윤미 충주노은중 교사
  • 승인 2021.04.04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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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박윤미 충주노은중 교사
박윤미 충주노은중 교사

 

“달맞이꽃인가요?”

대뜸 날아온 사진 한 장에는 노란 꽃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호박벌의 둥근 뒤태가 담겨 있었다.

“요렇게 꿀에 푹 빠진 호박벌처럼 우리도 책에 푹 빠져보아요.”

어렸을 적 언젠가 선생님께서, 유대인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책 읽는 달콤한 맛을 알려주기 위해 책에 꿀을 발라놓고 핥아먹게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혀를 날름거리며 책을 핥다니 그 모습도 좀 엽기적이고 책에 묻은 꿀맛이 달다고 책을 좋아하게 될지 의문스러웠다. 무엇보다 종이에 스며든 꿀이 끈적하게 남아있을 텐데 하며 걱정스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온몸에 노란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정신없이 꿀을 빨고 있는 호박벌의 모습은 요즘 책 읽는 달콤함에 빠진 우리들의 모습이다.

올해 문우들과 온라인 독서를 하기로 계획했다. 함께 읽는 방법은 매일 정해진 부분까지 읽고 인상 깊은 문구를 단체 카톡방에 올리는 것이다. 노트에 정갈한 손글씨로 정리한 것을 사진 찍어 올리기도 하고 메시지로 적어 올리기도 한다. 이끔이인 나는 아침에 그날 읽을 분량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문우들의 감상글이 하나 둘 올라오는 알림 음은 매번 설렌다. 바쁜 생활 속에서 틈틈이 독서하기를 꾸준히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아주 늦은 시간까지 알림 음이 울릴 때도 있다.

그런데 같은 글을 읽고도 각자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쩜 그렇게 다양한지, 그 다양성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독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한글로 된 문장이 왜 이리 어려운지 두세 번 반복해 읽고도 안갯속에서 헤매는 게 여러 번인데, 그때 그 안갯속을 함께 가는 동지, 또는 등대처럼 빛을 밝혀 주는 동지가 있다. 혼자였다면 짙은 안갯속에서 헤매다 그만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길을 완주한 날엔, 온라인으로 얼굴을 보며 서로 축하하고 못다 한 감상을 나누며 마무리한다. 코로나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만남의 공간을 찾게 되었고, 오히려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문학적 감수성과 성찰하는 마음을 나누고 있다. 또한, 매일 규칙적으로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정해진 분량 꼭꼭 씹어 먹는 좋은 식습관처럼 독서 습관이 생기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좀 체했었다. 규칙적으로 먹는 것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좋은 영양분이 내 속에 들어와서 이미 있던 것과 반응하여 다른 것이 만들어질 때의 화학반응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부조리한 세상, 곪고 곪아 아파지는 지구의 한계가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2주 동안 고영양을 섭취하고 다음 2주간은 쉬거나 부드러운 것을 취하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일 년 내내 고영양 섭취만 몰두하지 않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다. 지금은 `어린 왕자'를 함께 읽고 있다.

호박벌은 몸의 크기에 비해 날개가 작아서 몸을 띄울 수 있을 정도의 양력을 만들어 낼 수 없어 역학적으로는 날 수 없는 몸 구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호박벌은 잘 날아다니며 꿀도 따먹고 꽃가루를 옮겨준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잘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는데, 가슴근육을 발달시켜 날갯짓을 많이 하여 날 수 있단다.

문우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난다. 그리고 지혜를 만난다. 향기조차 노랗게 달콤한 달맞이꽃, 산책하다가 근처에 달맞이꽃이 있으면 그 모습을 발견하기도 전에 그 향기가 먼저 내게로 와서 제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끈다. 기꺼이 온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정신없이 달맞이꽃의 꿀 향기에 취해 대롱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한 마리 호박벌이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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