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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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2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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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정책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김 승 환 <충북 민교협 회장>

"동화정책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다소 단호한 의견에 대해서 즉각적인 거부는 없었지만 내심 동의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어서 나는 "한국인이 되라는 동화정책 보다는 다문화 정책이나 문화다양성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에 맞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당연한 것이어서 모두들 고개는 끄덕였지만 여전히 난감하다는 눈치였다.

어느 회의 장소에서의 일이다. 문화 관련의 그 회의는 외국계 한국인에 대한 문제, 즉 외국인이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살아야 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주제였다. 거기서 나온 방안은 외국계 한국인의 동화를 돕기 위해서 김치를 담그는 법,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한국 전통한복입기, 한국 전통가옥 거주체험, 한국어 글쓰기 대회 등 한국인 되는 방법을 지원하고 권장해야 한다는 정책들이었다.

무척 당연해 보이는 그런 정책을 내가 반대하고 나섰으니 다소 개방적인 문화부 공무원들도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반대에 이어서 '그런 것도 지원을 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베트남계 한국인들이 베트남어를 사용하고 베트남의 문화와 풍습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지원하자'고 말했다. 더불어 말하기를, 말레이시아 사람이 한국에 와서 편안하게 이슬람 종교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역시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하기사, 국경일이 되면 모든 아파트에 국기 게양을 강조하는 의식에서는 위대한 한국, 단일한 한국을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행사 때마다 국가주의(國家主義)를 주입하고 민족정신을 강조하며 단일민족 순결주의를 내세우는 한국사회에서 동일성을 포기하고 다양성을 가지자는 주장이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한국인은 이미 단일민족이 아니다. 이 비과학적인 단일민족 신화는 1900년대 초, 열강의 침탈과 식민지를 겪으면서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다. 한국인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실재의 공동체와 다른 상상의 공동체는 문화와 열망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민족국가를 뜻한다. 길게 설명할 수는 없으니 생략하거니와 하나만 예로 들면 조선 후기까지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했던 함경도의 여진족이나 더 오래전의 탐라국 또한 완전한 한국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여러 민족이 어떻게 단일국가로 재탄생되는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와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운동을 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다문화주의와 문화다양성의 정신을 가지자는 것이다. 싫건 좋건 이미 세계는 세계화로 인하여 세계체제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야에서 상호 협력과 상호인정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인간은 정치·경제만으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되는 문화가 중요한 것이고, 문화는 세계화와는 관계없이 각 민족의 독자성이 유지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정치·경제, 군사·외교의 경쟁을 약화시키고 배타성을 탈각시키며,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문화다양성의 정신이야말로 21세기 인류가 나아갈 길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닫힌 민족주의와 자민족 우선주의 또는 위대한 대한민국과 같은 주장은 국가와 민족을 위험하게 만들고 번영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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