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 문화예술계가 위태롭다
코로나 1년, 문화예술계가 위태롭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1.03.29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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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지 1년이 지났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가져온 전 인류의 삶의 변화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불가항력이다. 모든 분야가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지구촌은 강제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지구촌 사람들에게는 좌표는 변화에 적응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변화는 더디다. 기존의 생활습관 때문인지 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서 오는 일상의 불편과 경제적 타격을 일부 서양인들은 아시아인혐오로 표출하고 있다. 분노의 대상을 찾아 힘없는 이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있다. 생명의 소중함은 뒷전이고 극단적 개인주의와 극자본주의의 허상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사는 문제'는 인류 최대의 과제이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이 가중된다. 이는 숱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아 먹고사는 문제에서 삶의 질로 인간의 욕구 범위가 넓어지긴 했지만, 코로나19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역시 의·식·주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가 막대한 돈을 투입해 자국의 경제살리기에 나서는 것도 `먹고사는'가장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재정이 지원되고 있지만, 세계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시경제의 앞날은 코로나19 종식만큼이나 불투명하다.

미시적 관점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먹고사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활동과는 가장 거리가 먼 문화예술계는 생계가 위태롭다. 자존심 하나로 버터 온 예술인들이 누적된 생활고로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다. 문화예술분야에 변화의 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치고 있지만, 생활고는 그보다 더 혹독하다는 것이 예술인들의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이나 거리특화사업이 오히려 가난한 예술인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싼 부지에 뿌리를 내리고 이색 거리로 조성해 주목을 받게 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모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청주 대성로 향교길은 원도심 내 골목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없던 지역이었지만 젊은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특화 거리로 조성돼 활기를 띠었다. 여기에 충북문화관이 주축이 되어 전시가 열리고, 청주문화재야행으로 새롭게 골목문화가 재조명되었지만, 높아지는 임대료에 젊은 예술인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더구나 충북도가 충북문화관과 향교를 잇는 `충북의 몽마르뜨 언덕'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예술인들이 임대료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활동 근거지를 옮기면서 특화거리사업이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골목길로 막 자리를 잡아 나가던 향교길이 주춤하면서 지역 예술정책이 예술인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방안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예술이 떠난 자리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도 생기가 사라진다. “길어지는 코로나19로 예술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한 전업작가의 고뇌는 지역문화예술의 현재다. 입만 축이는 예술지원정책으로는 지역문화예술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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